제목 | 탕자의 회개 | |||
---|---|---|---|---|
이전글 | 너무나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1| | |||
다음글 | 긍정적인 사고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3-02 | 조회수10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제가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집 앞에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고 나서 계산을 하려는데 그 당시 편의점 점주와 편의점 알바가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의점 알바를 하는 분은 이곳에 주말만 되면 와서 일을 보는 분이셨고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매번 물건을 계산하고 나면 매번 기분이 상하게 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편의점 알바 하시는 분이 매번 계산하고 나서 돈을 주는 과정이 서비스 정신이 없이 빨리 돈이나 내~~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사냥하지 않고 투명한 어투에 불친절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말을 건넸더니 그 편의점 알바 하시는 분이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경찰을 불러도 자신은 지금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말을 주인이 있는 앞에서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내 신변에 위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었고 우선은 이 순간을 조용히 마무리 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가급적이면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앞에서 좀 예의를 갖추어 달라고 말한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고 먼저 사과를 했고 내가 너무 갑처럼 행동했다면 미안하다고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낮추니 옆에 나이 많은 편의점 점주가 중간에 나서서 그 상황을 종료 시켜 주었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언론 상에서 강서구 편의점 알바와 고객 사이에 말 다툼이 결국은 살인으로 이어져서 세상을 가슴 아프게 한 사건이 그날 나에게 일어날 수 있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요즘 경기도 않좋고 취업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돈을 벌어야 되는데 그런데 우리 아버지 세대같이 직업의 귀천 없이 열심히 땀을 흘려서 집안을 건사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자신은 특별한 사람으로서 3D에는 일을 하지 않고 조금만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바로 폭력으로 연결되는 그런 사회입니다. 남여간의 결혼이 이루어 지지 않는 이유도 서로 희생하여 공동체 정신으로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상이 너무 험악해 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원인은 오늘 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둘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줄 상속 자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당연히 내 돈이니 빨리 줘!!! 입니다. 상호 존중이 없이 아버지에게 내 돈 줘!!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어지럽고 험악해 지는 원인입니다. 아버지는 그 작은 아들에게 돈을 줍니다. 집안 재산을 반을 줍니다. 그것을 받아서 작은 아들은 재산을 탕진합니다. 그래서 거지로 전락합니다. 그 순간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알고 그제서야 아버지께로 돌아갈 마음을 합니다. 복음에서 작은 아들의 자세는 내가 갑이야 !!이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죄의 시작은 하느님과 같아 지려는 마음이 원인입니다. 작은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게 된 것도 내가 !!! 내가!!! 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도 나!! 나!!!입니다. 세상에 잘난 사람도 많은데 자신은 상대적으로 잘난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은 외소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폭력에 의지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그런 마음.. 예전에 어려서 가난한 날의 행복과 같은 동화적인 말은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가난 속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 주는 마음이 사라 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물질은 부족하고 세상 사람들의 인심은 인심대로 매말라 가는 현실입니다. 영혼의 가치는 완전히 사라져 가는 그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작은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 한 끼의 식사를 하기 위해서 다른 집의 종으로 들어가서 짐승들의 음식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현실에서 이전의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반성합니다. 현재의 우리 젊은 이들은 그런 마음이 없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참 우울한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목 현장에서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매일 매 순간 하느님의 정의와 따뜻한 온기를 전하기 위해 살아가시는 우리 성직자분들이 너무 떠올랐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데 그런데 세상은 삐뚫어진 마음이 가득차, 성직자분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현실입니다. 너무 아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 작은 아들이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된 행실을 보게되고 상호 존중의 마음이 없이 내것 줘!!의 마음, 교만한 자신을 보게됩니다.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 갑니다. 거의 모든 기력이 없이 아버지를 향해 갑니다. 아주 먼 곳에서 작은 아들의 양쪽 어깨가 처진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아버지는 보게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얼굴은 기쁜 환희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작은 아들을 향해 먼저 달려가서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 줍니다. 아들아 아들아 ..그리고 집의 종들에게 작은 아들을 목욕시키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잔치를 벌여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큰 아들이 밖에서 일하고 나서 돌아옵니다. 집안에서 잔치가 일어난 것을 보고 집안 종들에게 묻습니다. 왜 저렇게 집안에 잔치가 일어난 것인지? 작은 아들이 돌아와서 잔치가 일어났다고 하니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향합니다. 아니 나는 아버지를 향해 평생 순종하면서 살아왔는데 나에게 양 한마리 한번 주시지 않았는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반절이나 탕진했는데 왜? 그런데 그 순간 아버지의 말씀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작은 아들이다. 너는 나와 늘 함께 있었는데 작은 아들은 죽었다 다시 살아왔다고 하십니다. 죽었다는 것이 하느님의 울타리를 이탈하여서 방탕한 생활 자체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면 주님은 그 죄인을 맞이하신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작은 아들과 같이 회개를 하면 하느님은 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그를 자신의 품으로 품어 주십니다. 또 한가지 볼 수 있는 것은 참 신앙이란 ? 같이 외형적으로 같이 있는 것만으로 천국가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큰아들이 아버지와 몸은 같이 있었지만 작은 아들이 회개를 해서 돌아옴에 대해 잔치를 벌여주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모습에서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물어봐 집니다. 하느님 안에 있음은 나의 것을 내려 놓고 하느님 영광 돌릴 수 있는 마음의 가난이 중요합니다. 어둠에 있는 이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구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함께는 사랑이고 그 안에서는 하느님의 온기를 말합니다. 온기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항상 나를 먼저 내려 놓고 영적인 가난을 찾으며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