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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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3-02 | 조회수10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루카 15,1-3.11ㄴ-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당신께 죄악을 저지르는 부족한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녀라는 이유로 한 없이 용서하시고 참아주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에 머무르는게 보통이지만, 사순시기의 중반부에 접어든 오늘은 큰 아들의 부족하고 약한 마음에 머물러 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형제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를 깊이 성찰해봄으로써, 남은 사순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큰 아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들으면 어떤 분은 이렇게 되물으실 겁니다.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께 ‘유산’을 미리 내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지도 않았으며, 항상 아버지 곁을 지키며 종처럼 순종했던 착실한 큰 아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냐고 말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맹목적인 순종이 가장 큰 잘못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큰 아들에게 바라신 건 그가 당신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따르며, 그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아들’로서 사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스르지만 않는, 죄를 짓지만 않는 소극적인 ‘종’의 모습으로 불행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이 아버지에게는 당신과 함께 살기 싫다며 집을 나간 작은 아들보다 더 마음 아팠을지도 모릅니다.
큰 아들은 몸만 아버지와 같이 있었을 뿐 그 마음이 아버지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두번째 잘못입니다. 아버지와 마음으로 함께 있지 못하니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일에 대가를 바랐지요. 내가 아버지를 위해 이만큼 희생했으니 희생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 생각을 마음 속에만 품고 있으면서 끙끙대는 사이, 그의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보다 동생을 편애한다는 생각에 그만 ‘뚜껑’이 열려 그 불만을 겉으로 표출하게 됩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친교를 나눌 음식으로 ‘양’이 아닌 ‘염소’를 원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성경에서 염소는 고집에 세서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며 따르지 않는 ‘불의한 이들’을 상징하지요. 그런 염소를 원하는 모습에서 동생처럼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을 바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다만 아버지로부터 벌 받을 것이 두려워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 나갔던 동생을 아무렇지 않게, 잘못을 질책하거나 벌을 주지도 않고 다시 아들로 받아주는 모습에 마음에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나도 저렇게 살걸’하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온 걸 후회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아버지 곁에서 그분이 바라시는 일들을 하느라 고생한 것이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뜻을 거스르며 제멋대로 사는 ‘저 아들’이 있어야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더 의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앞세워 그들을 비난하고 단죄함으로써 자기들이 더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당신과 ‘함께 즐기고 기뻐하는’ 태도입니다. 아버지의 것은 다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입니다. 단지 물질적인 소유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걸 나도 원하고 아버지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참된 일치를 이루기를 바라신 겁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나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면, ‘아버지의 것이 다 나의 것’이 됩니다. 남은 사순시기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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