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성장하려면 “이걸 왜 해야 하는데?”라고 질문하십시오> 복음: 마태오 2,13-15.19-23
LORENZETTI, Pietro 작,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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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알려줄 거야’(2024)라는 영화는 동춘이라는 초등학생 아이의 성장기를 그렸습니다. 아이는 또래들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잘하지만, 이 아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어 유치원에 가자 선생님에게 “제가 이거 왜 하는 거예요?”라고 묻습니다. ‘왜’는 사춘기 때 자주 사용하게 되는 질문 형태입니다. 이 ‘왜?’에는 “내가 누구예요?”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는 학생이니까!”와 같이 정체성이 그 해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를 묻는 것은 내가 누구냐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왜 영어 유치원에 보냈느냐고 물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영어 선생님이 알려줄 것이라 말합니다. 그 와중에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다가 스트레스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기절하고 맙니다. 부모님은 과연 “너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어렵습니다. 사실 자기 행복을 위해 그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는 그만두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냉담자가 많을까요? 왜 성체를 영해야 하는지, 왜 고해성사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라고 해서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동춘이는 초등학교 졸업여행 때 막걸리 한 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병에 담아옵니다. 그리고 발효되며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이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거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동춘이는 모오스 부호를 인터넷에 찾아 한글로, 영어로 말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그러나 말이 되지 않습니다. 동춘이는 미래에 중동과의 거래가 많아질 것이기에 페르시아어를 배우게 됩니다. 더는 왜 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어로 막걸리 거품의 모오스 부호를 연결해보니 복권 번호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번호가 4등 당첨 번호라 알려줍니다. 동춘이는 순종해보기로 합니다. 신기하게 정말 4등에 당첨됩니다. 제가 십일조를 내며 신기해했던 것과 같습니다. 부모나 세상 사상 사람들은 이런 신기한 기분 좋음은 줄 수 없습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우리는 참 창조자의 존재를 믿어갑니다. 부모는 아기 때 걸음마를 해야 하고 대소변을 가려야 하고 음식을 수저로 먹어야 하는 이유를 잘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면서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일해야 하는지, 왜 결혼해야 하는지는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살아보니 하지 않는 게 낫다고도 말합니다. 부모보다 더 큰 존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제 더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기 때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줄 어떤 존재를 찾기 전에는 마음에 평화가 없다고 여기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동춘이에게 막걸리와 같은 존재를 발견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하.사.시.’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것을 읽으며 왜 읽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후회가 없으며 또한 그 말씀대로 살면 항상 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할을 사람이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의 존재에 한 발짝 더 다가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짐을 싸서 이집트로 떠나자는 요셉 성인의 말에, 또 이집트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자는 말에 군말 없이 순종하십니다. 왜냐하면 꿈에 천사가 말해주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이미 인간이 아닌 인간을 창조한 분이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계심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 것 같으면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창조하신 분은 항상 당신이 행복하신 것을 원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이들이 주님의 뜻 앞에서는 고통 가운데서도 한없이 기쁨을 얻는 이유입니다. 결국 사람은 순종할 대상을 찾는 과정을 통해 성장합니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묻게 될 때 속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할 때는 그 대상에게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진리를 갈구합니다. 지혜는 진리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행복임을 알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