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이 사순 시기에 또 비움을 / 사순 제3주일 나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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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3-03 | 조회수1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이 사순 시기에 또 비움을 / 사순 제3주일 나해(요한 2,13-25 )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을 보시고 채찍을 들어 가축과 함께 그들을 그곳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고 탁자도 엎어버리셨다. “이것들을 치워라.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하고 이르셨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사두가이들과 성전 사제들은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으나, 그분께서는 ‘기도하는 집’으로 정화하고자 하셨다. 이 시도로 그들은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한다. 자신들이 가진 그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채찍을 휘두르는 예수님을 하느님 모독자로 단죄하려 했다. 당시 사두가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과 사회적, 또는 혈연적으로 서로 연관이 쾌나 있었고,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그래서 사두가이들에게 성전 사업은 그들의 큰 소득원이었다. 그곳 활동으로 얻은 수입은 모두 그들만의 주머니 차지가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성전 정화 행동이 자신들의 돈줄을 끊는 행위로 여겨, 눈엣가시 같은 예수님을 이참에 아예 죽이기로 그들은 결심한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오랜 관행으로 얼룩진 부패와 권력욕으로 만연된 예루살렘 성전을 오로지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시고자 하셨다. 성전은 아버지의 집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니까. 사실 우리 몸도 성령께서 머무시므로 각자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하느님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계명을 따라 산다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 따라 살아감을 뜻한다. 사실 우리는 계명이 자유를 거스르고 제한한다고 생각하기도. 그렇지만 계명 없이 인간 스스로에게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온전히 맡겼을 때 과연 그 결과는? 선하게 창조되고 자유 의지로 선을 추구하려는 인간이지만, 자신이 하느님의 모상임을 망각한다면 인간은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할 게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썩고 악취 나는 성전을 허물라신다. 당신께서 다시 세우시겠다나. 성전은 아버지께서 거처하실 집이고, 부활할 당신 몸이기에. 이처럼 우리 신앙인 각자도 성령께서 머무는 성전이다. 따라서 우리 몸인 성전이 거룩해야 함은 성령께서 늘 거처하시기에. 따라서 내 안에 새로운 성체를 모시지 않고 인간적인 이기심과 욕심으로만 채운다면, 우리 몸을 성전이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의 거룩한 삶으로, 늘 성전을 새롭게 가꾸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세속의 사람들이 우리 신앙인에게 기대는 것은 크고 화려한 성당건물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영적 모습일 게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내어주신 그 성체를 지금 우리가 성당에서 모신다. 빵과 포도주로 당신 사랑을 이웃에게 그대로 전하라시면서 주신 그 성체다. 이 몸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또 새롭게 만나고 우리 또한 새 성전이 된다.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마음은 과연 편안하실까? 세속의 욕망이 가득한 우리임을 우리가 너무너무 잘 아는데도. 지난 한 해 겨우 두 번 치른 판공의 보속이 겨우 끝난 지 불과 엊그제인데도, 타락과 위선은 여전히 우리 마음 한 구석에 들어와 뻔질나게 머물고 있잖은가! 지금 예수님께서는 내 비좁은 성전에서 “이것들을 치워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이 사순의 시기에 또 비워내자. 작년 그 사순 그 마음으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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