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성찰로 되돌아보는 삶을 / 사순 제3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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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3-04 | 조회수12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성찰로 되돌아보는 삶을 / 사순 제3주간 월요일(루카 4,24ㄴ-30) 믿는다는 게 과연 쉬울까, 아니면 어려울까? 쉽다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게 믿음일 게다. 믿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할거라면, 연구도 고민도 해야 하리라. 그래서 그 명백함을 보면 흔들림 없이 믿을 수도. 그러나 믿음은 단순한 받아들임을 요구한다. 신앙을 아무리 설명해도, 최종적으로 마지막은 결국 개인 몫이다.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이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믿음은 자연과학의 이론처럼 증명되는 게 결코 아니리라. 나자렛 사람들도 그 결단은 정녕 어려웠으리라. 그것은 그들만의 믿지 않을 것들이 눈에 보였기에.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도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건, 기적이 믿음을 주는 게 아닌, 믿음만이 기적을 가져다주기에. 그래서 우리도 기적 보여 달라 청할 게 아닌, 단지 믿음 더해 주기를 청해야만 할 게다. 그러기에 나자렛 고향 분들이 예수님 배척하는 게 어쩜 당연했으리라. 그들은 오로지 출신, 성장배경 등에만 매어있었기에. 사실 예수님은 비천한 나자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게 그들 눈에 담긴 고정관념이었다. 자신들도 소외되고 하찮은 이었기에, 예수님역시 특별한 게 없는 분이시라는 게 그들 생각이었으리라. 예수님은 엄히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에 다 화만 잔뜩 났을 게다. 과거를 폄하하려는 그들이니까. 지금 우리네 교회도 마찬가지다. 열등감과 왜곡된 가치관 가진 이일수록 외적만 따진다. 이러니 천박한 만남만 있을 뿐, 바른 가치관 지닌 ‘멋진 만남’은 다소 거리감 있다. 그러기에 우리네 실상도 떨어져 있는 이보다 가까운 분들께 존경받는 게 훨씬 어렵다. 안고 있는 그 약점이 속속들이 노출되었기에. 그래서 가장 가깝다는 부부마저 존경하기가 매우 어렵단다. 많은 여성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는 만나지 않다할 정도니.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정말 남편 존경한다는 이 있었다. 그녀 말로는 자기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제대로 되는 것 없는, 사회적으로 보면 참 무능한 이란다. 그런데도 남편 존경하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고 욕심 없으며 순수하다나. 이러다보니 가치관과 시선에 따라 상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나보다. 약점가진 이는 허영이나 교만에 빠지기 쉬워, 어떤 대가 치르더라도 다른 이를 압도하려 든다. 때로는 자기가 높아지려는 것보다 다른 이 추락하는 것에 즐거워한다. 이런 이는 남 불편하게 할뿐더러, 자신 삶마저 기쁨을 못 누려 어둡게만 산다. 우리는 멀리 있는 이보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소홀하거나 상처 주고받는다. 우리의 행복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 말씀을 실천한다면, 여기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에. 우리가 예수님 믿는 이유는 사신 모습이 매우 좋아 보여, 닮고 싶은 마음 들었기에. 예수님 모시는 곳만 참 기쁨이 스민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하신 그 경고는 지금 우리를 향한 것일 수도. 우리가 그분 잘 안다할 그때, 우리마저 위험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겸손과 배려의 마음일 게다. 축복은 하느님 자비로 선사하지, 법의 준수로 얻는 보상은 아니다.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분께서 돌보시는 이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삶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 지위, 학벌, 능력 등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조장한다. 함께하는 서로의 부족함을 나누기보다는 경쟁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하는 것일 게다. 지금 이 시각 우리도 업신여기는 이가 없는지를 냉철히 성찰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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