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 / 따뜻한 하루[3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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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3-05 | 조회수147 | 추천수3 | 반대(1) 신고 |
평범한 가정주부인 저는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기념으로 떡을 이웃과 나눴습니다. 이 중 할아버지 한 분이 고맙다면서 현관문에 호박과 잎이 담긴 검은 봉지를 답례하셨습니다. 이후에도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찾아가면, 얼마 후 집 현관에 검은 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봉지에는 김부각, 깻잎과 콩잎 등의 소박한 답례물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저희 가족은 노부부와 소소한 인연으로, 더더욱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서 '쿵' 소리가 들렸고 평소 거동이 불편하던 할머님이 생각나서, 급하게 올라가 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 불안해진 저는 곧장 119에 신고했습니다. 구급대원과 함께 문을 뜯고 들어간 집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할머니는 빠른 발견과 신속한 대처로 위급 상황은 넘겼고, 뒤늦게 병원에 오신 할아버지는, 저의 손 꼭 잡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저희 집 차를 몰래 세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알고는 차를 숨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깨끗이 세차해 두셨습니다. 남편이 할아버지를 설득해 세차는 멈추었지만, 문고리에는 검은 봉지가 더욱 자주 걸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고 할아버지는 자식과 지내려고 이사를 하게 되셨는데, 그날 할아버지는 저희 집에 오셔서 옥가락지와 은가락지 하나를 내밀며 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게 참 좋았지, 이것은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아마도 먼저 간 그 할멈이 막내딸에게 주라고 남겨둔 것 같아서 이렇게 들고 내려 왔어.“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주신 그 가락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할아버지와 그 검은 봉지가 떠오릅니다. 공자님도 인(仁)에 앞서서, ‘서로 사랑’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의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34-35). 그렇습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젊은 부부와 노인네의 사연은 참 다정다감합니다.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를 보면서, 아직도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것은 우리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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