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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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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6 조회수26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4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고등학교 때 처음 타자기를 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는 보편화되지 않았지요.

따라서 타자기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더군다나 직접 타자를 쳐보면서 종이에

글이 찍히는 것을 보면서

마치 책을 출판하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자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을 타자 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두 손가락만을 이용한

독수리 타법이라서 1분에 3~40개의

단어만 띄엄띄엄 타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실력을 향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두 손가락의 독수리 타법으로는

실력 향상이 불가능했습니다.

저의 이 독수리 타법을 본

누군가가 양손을, 그러니까

모든 손가락으로 타자를 하면 속도가

빨라진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계속된 연습으로 양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고,

또 타자기 자판도 모두 외우면서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했습니다.

한때, 1분에 800타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두 손가락만 사용하는

독수리 타법만을 고집했다면

실력 향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히면서 비로소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과거의 방식에만 매여있으면

어떤 발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만들어 갈 때,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와 너무 다른 이 현재를 살면서,

이 현재에 맞게 신앙생활도

계속 변화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때가 좋았어.’만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과거에만 매여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만을 강조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조항은 모두 613개에 이르지요.

사실 이 조항 613개를 거슬러 올라가면

십계명이 되고, 또 이를 다시 줄이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이 사랑이

율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매여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사랑은 보지 않고

613개의 조항만을 봅니다.

사랑의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 녹아 들어갔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은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인 삶이 아니라,

금 실천해야 하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 안에서만 우리는 하느님 나라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르누아르)

사진설명: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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