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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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3-09 | 조회수12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4년 03월 09일 토요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오늘 독서의 마지막 선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복음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발견하는데, 바리사이와 세리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서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기도하려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둘의 대비를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는 그들의 기도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였습니다. 우리말로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라고 옮긴 그리스 말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바리사이는 서서 자기 자신을 향하여(‘프로스 헤아우톤’) 이렇게 기도하였다.”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에이스 톤 우라논’)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기도합니다. 바리사이의 기도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면 세리의 기도는 ‘하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그분의 현존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기도이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하느님 없이 진행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결국 하느님의 최종 판단은 세리가 ‘의롭다’는 것으로 선언됩니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하느님 없이 자기 행위만 과시한 바리사이의 기도는 그 응답을 받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을 향하여 온전히 그분을 만나고 그분과 소통한 세리는 ‘의롭게 됨’이라는 기도의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나의 삶과 성장에만 관심을 두는 태도는, 그것이 아무리 도덕적이고 품위 있는 생활이라 하더라도, 그저 신앙으로 포장된 경건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구태의연한 경건주의를 넘어서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소통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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