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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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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10 조회수92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은 구원과 심판으로 돼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30년 쯤부터 본 개신교 성경에는 오늘 제2독서 8절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마치 믿음의 정의를 설명한 것처럼 돼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표현이 변경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성경은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우리는 표현을 약간 달리 했습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구원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은총은 또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은 믿음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때 믿음은 사전적인 뜻인 믿음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중의적이고 다의적인 표현을 담고 있을 겁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을 때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원론적인 뜻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걸 뜻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그렇다면 4복음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삼위일체로서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 전체를 아우르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성경 전체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들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됐다고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하도록 하느님께서 준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살면서 선행을 하지 않는다면 거시적인 면에서 봤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 아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의 작품이 아니였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지녔겠지만 후에 그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본인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비교격 조사 보다와 또 강조 부사 를 언급한 것을 보면 어둠은 세상을 상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에 좀 더 집중하게 되면 예수님께 집중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심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복음 말미의 말씀을 보면 확연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그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세상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빛인 예수님께로 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을 드러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졌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은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어떨 경우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마치 어둠이 빛을 밀어내려고 하는 모양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말은 어떻게 될지는 분명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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