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왕실 관리의 믿음에 대한 단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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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3-10 | 조회수11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복음을 보면 왕실관리의 아들이 병마로 앓아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을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들이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관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음에 나오는 상황만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완전히 신뢰를 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아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리하여 집안이 믿게 됐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런대로 괜찮은 믿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예수님을 신뢰하였다면 더 좋은 믿음으로 인정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 제가 아쉬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왕실관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아들에게 가는 과정에서 종들을 만나 아들이 열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됐을 때 관리가 취한 행동을 한번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관리가 기쁨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또 예수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화살기도와 같은 기도를 하며 뭔가 감사함을 표했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라고 해서 떠날 때 그때 그 말씀을 어느 정도 믿었다고 정황상 판단할 수 있는데 관리는 그만 중간에 열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간을 종에게 물어봤던 것입니다. 왕실관리는 어떤 의도에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됐을 것 같습니까? 자기 아들이 나은 게 예수님의 은총으로 나은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다른 요인에 의해 나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물어봤던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관리는 마침 그 시간이 자기가 생각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간과 거의 근접했다고 판단해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켜주셨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제3자의 입장에서 이 왕실관리의 믿음을 들여다본다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관리의 모습을 보면 궁금해서 물어본 것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궁금한 상황도 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의심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의심이라고 해도 양호한 믿음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은 반전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질문을 하지 않고 단순히 집에 가서 보니 아들이 나아지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했을 때 그 이후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한 자신의 믿음과 질문을 해서 마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각에 아들이 낫게 되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확신을 가졌을 때의 믿음의 차이가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해를 해본다면 유익한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질문을 안 하고 그냥 나았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질문을 통해 확실하게 그게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이라고 확신을 하는 게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더 독실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묵상도 해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신앙을 바라볼 때 맹신하는 믿음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심을 하는 게 좋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신앙이나 믿음을 받아들일 때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믿음의 뿌리가 확실하게 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관리의 질문이 의심의 차원에서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의심이 한편으로는 자신의 믿음이 더 확고한 믿음으로 변화가 되는 단초를 제공한다면 그것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입니다. 믿음도 맹목적인 믿음은 오히려 그게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고 그런 믿음은 어떤 변화가 왔을 때 모래 위에 집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한편 의심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확인을 하듯이 한번 점검 차원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관리의 모습처럼 믿음의 여정에 이런 행동을 한다면 더 좋은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묵상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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