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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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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12 조회수206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사순 제4주간 화요일

 

 

 

<하느님 사랑을 거부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복음: 요한 5,1-16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연못에서 앉은뱅이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큰 사랑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것보다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긴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리도 큰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할까요? 그것을 받아들일 그릇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가출하여 길을 헤매는 거지 아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씻겨주고 저희 옷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이는 어릴적 당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를 보고 동정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거의 양자로 삼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이 세상은 그렇게 따듯한 곳이 아닙니다. 자기 부모로부터도 분명 사랑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모도 사랑해주지 않는 자기를 생판 모르는 아주머니가 사랑해 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아이는 우리가 학교 간 동안 돼지 저금통을 다 털어 도망을 갔습니다.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찾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아보지 못하면 자기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기 위해 다른 사랑을 거부하게 됩니다. 원망하는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해주려는 사람도 거부하고 밀쳐냅니다. 그렇게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들이 하느님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사랑을 알아볼 수 있게 그 사랑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 공동체에서 하느님 사랑의 조각을 맛봐야 합니다. 만약 성당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세상의 공동체와 큰 차이가 없다면 미사에 나오는 것 만으로 하느님 사랑을 절대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해리 할로우 박사가 새끼 원숭이를 엄마 원숭이와 격리하여 실험하였습니다. 어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원숭이는 자해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다른 원숭이들을 극도로 멀리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원자 원숭이를 넣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어미와 몇 달을 살며 세상이 온통 사랑으로 여겨지는 원숭이를 같은 우리에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도망 다니다가 그 원숭이가 털을 골라주자 자신도 미안한지 치유자 원숭이의 털을 골라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다른 원숭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유를 먹고 밥을 먹고 떡을 먹고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단단한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해서 더 딱딱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보니 성당 다니던 한 자매가 스토커에게 쫓겨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자매에게 어떤 사람도 신경 써주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이상한 옷을 만들어 입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 남자가 자기를 전기로 죽이려고 한다는 피해망상증이 생긴 것입니다. 

 

 

    공동체로부터 하느님 사랑을 조금이라도 체험하지 못하면 성체성혈은 너무 멉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보아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성사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이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그 성사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사랑을 가진 공동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장 발장도 주교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서야 다시 종교에 귀의할 수 있었습니다. 외적인 선교 이전에 사랑의 친교가 가득한 공동체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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