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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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3-14 | 조회수18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영적 승리의 삶-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사세요!”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3-4)
"어디로 가야 할 길 내게 알려주소서, 내 영혼 당신을 향하여 있나이다."(시편143,8ㄴ)
올해 3월의 성 요셉성월이, 사순시기가 참 고맙습니다. 4월10일, 나라의 명운이 달린 총선을 앞두고 신자들뿐 아니라 온 국민이 정말 깨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회개가 답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와 회개, 사랑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어느때 보다 항구히, 간절히 깨어 기도해야, 회개해야,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이래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상하면 저는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가톨릭 기도서> 1.성호경, 2.주님의 기도, 3.성모송, 4.영광송 순서대로 기도를 바친후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나로 살기위해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사랑을 담아 양팔을 활짝 펴들고 만세육창의 간절한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 수도원 만세!”
어제 “하”씨 성(性)의 이름을 지닌 분과 나눈 기발한 덕담에 행복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하닮(하느님 닮기)의 여정을 살 수 있길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하느님과 같은 ‘하’씨 성이라 하닮의 여정을 충실히 살아내고 계시지요! 축하드립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오늘의 강론 제목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영적 승리의 삶을 사세요!”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불림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유대인 랍비 여호수아 헷쉘의 말처럼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은 결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불림 받은 유일무이한 성소자들입니다. 불림 받은 자로서 과연 몇%,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나를 실현하며 살고 있는지요? 모세나 예수님은 제가 볼 때 100% 참나를 실현한 성소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모세의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모습이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양상은 다소 달라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 모세는 역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새로운 중재자이자 우리의 영원한 중재자이신 예수님의 예표가 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이때 두분께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대로 오늘날도 반복되는 인간들 모습입니다.
정말 계속되는 전쟁에, 악순환의 반복에, 눈먼 자본주의 문명의 야만시대(?)에 과연 무지한 인간의 진보는 가능한지 묻게 됩니다. 인간성의 진보가, 영성이 바탕되지 않은 인공지능의 결과는 어떠할지 낙관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다산 어른과 논어의 공자의 말씀이 감로수처럼 삶의 지표가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가장 어른스러운 태도는, 사람에 대해 미리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다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희망이기에 사람에 절망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이들이라면 결코 절망, 원망, 실망의 삼망의 사람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남이 나를 속일까,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 미리 염려하지 마라. 다만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이 현명하다.”-논어 무지에 대한 답은 깨달음의 은총뿐입니다. 깨달음은 빛입니다. ‘깨달음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서서히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해방입니다.
만일 제1독서 탈출기에서 중재자 주인공 모세가 빠져 버린다면, 역시 요한복음에서 중재자 예수님이 빠져 버린다면 상황은 캄캄한 어둠일 것입니다. 두분의 찬연한 빛이 무지와 허무의 심연의 어둠을 환히 밝히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말 탈출기의 모세는 참사람의 원형이요 섬김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 섬김의 리더십을 100% 발휘하는 모세의 삶이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심판과 무지한 백성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같은 처지로 참으로 진퇴양난의 위기입니다.
답은 위의 하늘 향한 기도뿐입니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배은망덕의 무지한 못난 백성들을 살려내기 위한 모세의 단호하고 결연한 자세와 기도가 결국 하느님을 움직여 심판을 멈추도록 합니다. 참으로 목숨을 걸고 하느님과 담판하는, 애원의 기도를 바치는 모세입니다. 백성들의 배은망덕에 진노한 하느님을 만류하는 모세의 애원이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마음에 정통했고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신뢰했기에, ‘하느님 답지 못하다’며 하느님의 약점을 들먹이는 이런 목숨을 건 애원의 기도가 가능했음을 봅니다. 하느님의 둘도 없는 파트너 모세처럼 기도하는 부모가, 지도자가, 어른이 교회뿐 아니라 각계 각층에 참으로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킨 마지막 애원이 절정입니다.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겠다.’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정확한 사실(facts)에 근거한 모세의 설득에 감동한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던 재앙을 거두니 하느님과 영적전쟁에 승리한 ‘기도의 사람’ 모세입니다. 새삼 기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영적 승리를 위해서는 모세처럼 성서의 하느님 말씀에 정통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다음은 요한복음에서는 유다인들에게 사면초가의 위급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위한 증언을 명명백백하게 밝힘으로 이들과의 영적전쟁에 승리합니다. 1.세례자 요한이, 2.아버지께서 완수하라 맡기신 일들이, 3.아버지께서. 4.성경이 예수님 당신을 증언함을 밝히시며 이들의 부족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며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과연 무엇이, 누구가 오늘의 우리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인가 묵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이 우리를 증언해 줄 것이며 이웃도 우리를 증언해 줄것입니다. 만세육창을 바치는 저로 말하면 하느님이, 예수님이, 나라가, 교회가, 성모님이, 수도원 공동체 형제들이, 또 매일 삶을 담아낸 강론들이 저를 증언해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음 유다인들을 향한 예수님 말씀이 흡사 우리를 향한 충고 같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지 않는다. 나는 너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이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이들의 성서말씀 공부 부족과 믿음 부족을 맹렬히 꾸짖는 예수님입니다. 기도의 싸움에서 하느님을 이겨낸 영적 승리의 모세요, 유다인들을 궁지에 몰아넣음으로 예수님의 영적 승리로 대미를 장식하는 오늘 복음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한결같고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로, 하느님의 지혜와 힘으로 무장했을 때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사순시기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구원을 가지시고, 저를 찾아 주소서.”(시편106.4).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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