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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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15 조회수92 추천수1 반대(0) 신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 3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작년 4월 15일에 선종하신 박종인 라이문도 신부님, 그리고 지금 묵상글을 옮겨 드리는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또한 분은 삼성에서 연구 소장하신 윤석렬 소장님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나름 삶에서 아주 무섭게 사신 분들임니다. 죽음 앞에서도 눈한번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고 삶 자체가 고욕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꽃 자리로 만들면서 살으신 분들입니다. 어떤 누가 성가시게 하여도 그것을 내치지 않으시고 가슴에 안고 가신 분이시고 항상 끝은 그리스도의 승리이신 분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하면 배부른 사람들만 들어가는 것으로 서울대 사람들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본 사람이었지만 저의 소장님은 경남 진주 에서 자라셨고 자라면서 아버지는 매일 술 드시고 공부하는 윤석렬 소장에게 공부하지 말고 돈 벌어와 그런 말씀을 수없이 들으시고 유년을 보내셨고 학비와 생활비를 어려서는 신문을 돌리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하셨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신 분입니다. 서울대 학부 시절에도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가정교사로 학비 조달하고 공부하신 분입니다. MIT까지 가기까지도 인생의 그런 슬픈 과정을 본적이 없습니다. 들어가서도 힘들었고 들어가기까지도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아버지는 돈벌어와 그 말씀으로 일관하신 분이고 매일 술로서 시간을 보내신 분이라고 해요. 박사를 어렵게 받고도 삶의 역경은 연속이었지만 그러나 그 과정속에서 나름 주변을 꽃자리로 만드신 윤석렬 소장님입니다. 그분이 매주 자신의 에세이집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상기 세분의 삶은 참 제게는 벅찬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많이 배우고 익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영성과 삶은 그분들의 것이지 저의 것은 아닙니다. 저도 조용히 묵묵히 걸어가려 합니다. 나도 하느님 만나는 기쁨을 같이 나누고 나의 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정체성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윤석렬의 최원석으로 기억하려 하지 최원석 본인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윤석렬 소장과 나는 다릅니다. 내가 윤석렬 소장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스스로 걸어 가야 하고 주님께서 주신 나의 십자가를 스스로 질머지고  한발 한발 주님과 같이 가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어떤 사람이 나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떤 사람과 연관된 분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폄하 합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일지 ?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아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명암을 주님 안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자비심으로 내가 현재도 존재하고 앞으로 나의 구원도 주님안에 있기에 자랑도 주님을 자랑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두분의 신부님도 주님을 자랑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두분 신부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영적으로 바라보면 참 한심한 사람이 저입니다. 이런 한심한 저에게 저 큰 태산 같은 성인 신부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도 성령안에서 거듭 나는 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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