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보라, 예수님을!”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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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3-17 | 조회수17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새 계약의 예수님, 순종과 섬김의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 “보고 배워 닮아갑시다!”
“들어라”만 중요한 말마디가 아니라, “보라” 역시 참 중요한 말마디입니다. 잘 들어라 있는 두 귀요, 잘 보라 있는 두 눈입니다. 무엇을 봐야 합니까? 믿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봐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모두가 눈여겨 잘 보라고 제대 뒤 중앙에 높이 걸려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 살림 운동에 전념하는 정성헌 선생의 귀띔 40가지중 맨먼저 나오는 충고가 “보고 싶은 사람이 돼라”입니다. 과연 보고 싶은 분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은 있으십니까? 아마 제가 제일 많이 보는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 얼굴일 것입니다. 날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볼 때 마다 예수님을 뵙듯 만나는 교황님 얼굴입니다.
또 수도원에 정주하면서 참 좋아하는 장면이 셋입니다.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었을 때, 또 집무실문을 열었을 때 활짝 열려 한눈 가득 들어오는 하늘과 산 그리고 아름다운 수도원 전경에 마음도 환해지고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또 하나는 성전에서 공동전례기도시 한눈 가득 들어오는 늘 봐도 늘 새로운 형제들 얼굴입니다. 특히 지금도 자비의 집 숙소문을, 집무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전개되는 풍경과 더불어 생각나는 "당신이 그리울 때" 라는 시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구름, 빛나는 별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1998.11.22.
무려 26년전 1998년 여기서 썼던 시입니다. 물론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 얼굴, 예수님 얼굴입니다. 늘 곁에 있어도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주님 얼굴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42장 앞부분 두 구절입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2-3)
믿는 영혼들 누구나의 갈망이 이런 하느님의 얼굴을, 예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며 바로 이런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날 위기의 시대라 칭하며 혹자는 셋을 꼽습니다. “1.기후위기, 2.인공지능, 3.쓰레기”로 모두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합니다. 날로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되는 기후요, 곳곳에 넘처나는 쓰레기들이요, 날로 들어나는 스마트폰 중독자들이 현재의 추세입니다.
스마트폰을 볼 것이 아니라, 특히 신자들은 하느님을 뵙듯, 예수님을 뵙듯, 눈을 들어 하늘을 자연을 무엇보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눈의 훈련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을 볼수록 시력은 나빠질 것이고 예수님을 볼수록 시력은 좋아질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내가 형성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 예루살렘 축제때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 몇이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청합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정말 영성생활에 참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전체를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뵙는 것 역시 능력이요, 똑같은 눈이 아니라 영적 시력의 차이도 클 것입니다. 노화와 더불어 육안의 시력은 약해져도 영안(靈眼)의 시력은, 심안(心眼)의 시력은 날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날로 깊어지는 자비와 지혜, 온유와 겸손, 찬미와 감사의 영안(靈眼)이요, 이런 눈으로 평생 깊이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할 예수님입니다. 분별의 지혜도 이런 눈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평생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하는 예수님이요 날마다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으라고 매일미사가 있습니다.
첫째, 새계약의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제1독서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참 고맙고 은혜롭습니다. 하느님은 신실하신 분이며 변함없이 당신 약속에 충실하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한 새계약의 약속이 마침내 예수님을 실현되었습니다. 새계약의 이 은혜로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계약을 맺겠다...내가 맺어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의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새계약은 예수님을 통해,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구원의 행복은 없습니다. 주님의 법은 우리 마음에 새겨지고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됨을 확인하는 새계약의 미사은총입니다.
둘째, 순종과 섬김의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값싼 구원은 없습니다. 값싼 새계약의 축복은 없습니다. 새계약이 실현되기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뇌와 시련과 고난, 죽음과 부활의 일련의 과정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합니다. 순종과 섬김으로 요약되는 히브리서의 예수님의 평생 삶의 묘사가 큰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새삼 우리의 현세 삶은 고난을 겪음으로 순종을 배워가는 순종의 학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일상의 모든 고난을 순종을 배우는 계기로 삼을 때, 오히려 전화위복의 축복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영적성장과 성숙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 요한복음은 우리 모두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배우도록 격려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완전히 죽어 무(無)로 없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내적변형을 이뤄주는 죽음입니다. 뿌리가 나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의 수확이니 그대로 새생명의 부활 축복으로 이어지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상징하는바 섬김의 사랑, 섬김의 비움입니다. 주님은 섬김과 추종을 명쾌하게 요약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섬김과 추종이 하나입니다. 새삼 우리 삶은 예수님을 따라 닮아가는 순종의 여정이자, 섬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순종과 섬김의 롤모델인 예수님을 보고 배워 따라 닮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이 참 자랑스럽고 영광스럽습니다.
셋째,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영광스런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할 분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자 기쁨이 되고 끊임없이 샘솟는 내적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은 순종의 여정에 항구함으로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고백과 기도가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주님은 부활 영광의 승리로 끝나는 죽음임을 예고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단히 당신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으로 이끄시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는 파스카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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