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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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3-19 | 조회수401 | 추천수7 | 반대(0) |
나이를 먹으면서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잔소리’라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지내기 마련입니다.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 심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잔소리가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사람들은 더욱 멀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선배들이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자주 여세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철이 들면서부터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저를 믿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침묵이 더욱 무겁게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둘째는 ‘반복되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도 자꾸 들으면 따분하고 귀찮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지난날의 허물을 들추어내면서 험담하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부부간에 다툼이 있을 때라도 지금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예전에 있었던 일까지, 특히 친정과 시댁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내면 다툼은 싸움에까지 이르고,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도 합니다. 셋째는 ‘나 때는’이라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선배들이 ‘나 때는’이라고 하면서 훈계를 하면 귀찮았습니다. 돌아보니 저도 가끔 ‘나 때는’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돌일 수 없다고 합니다. ‘나 때는’이라는 말은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두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를 경청하면 좋겠습니다. 본당 모임에서, 사목회에서 이 3가지 말만 조심하면 사목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 우리 삶의 등대가 되고, 지치고 목마른 영혼에 단물이 되지만 제게 특히 가슴을 뛰게 했던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곡식을 얻으리라.’입니다. 저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상선벌악(賞善罰惡)은 문화와 문명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품성구로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곡식을 얻으리라.’로 정했습니다. 성실하게, 정당하게 열심히 일한 사람이 그 노력의 대가를 받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불의한 사람이 득세하고, 불로소득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권력을 사유화해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회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서 예언자를 보내셨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eritas Liberabit Vos!)' 신학교에서 강의 시간에 이 성경말씀을 들었는데 마치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본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원하는 것을 채울 수는 있지만 참된 자유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유는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는 상태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믿음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입니다. 희망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입니다.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었지만 라자로에게 인색했던 부자는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없었던 부자청년은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비록 불가마 속에 있었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 놓았기에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은 기꺼이 가진 것을 주님께 봉헌했으니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는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때문에, 사랑 때문에, 희망 때문에, 열정 때문에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다면 감옥에 있어도, 병중에 있어도, 가난할지라도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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