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의성(醫聖) 장기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 조건 없이 응답하는 마음을 / 사순 제5주간 수요일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4-03-20 | 조회수17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의성(醫聖) 장기려"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 입니다. 어서 집으로 가세요.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 하고 있을 때 이를 눈치 채고는 병원 뒷문으로 몰래 - 원장 -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게는 방한칸 없었습니다. 다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재직중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담뱃값만도 못한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설립하여 1989년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조합원에게 의료혜택을 주었습니다. 민간 의료보험 이었습니다.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했고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자신이 칭송받는것을 싫어 했습니다. 육체나 환경을 초월한 영혼과 수술실에서 그가 밤새워 가며 부상당한 국군 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병원 3층에 떨어졌습니다.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일평생 빛바랜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이는 듯 합니다.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 했습니다. 사양 하였습니다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내를 그리워 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 했습니다. 가난하고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이시대를 밝히는 등불 입니다. (옮겨온 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