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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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3-24 | 조회수374 | 추천수8 | 반대(0) |
예전에 교구 사목국에서 일할 때입니다. 당시 서울대교구는 ‘복음화’를 중심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담당 사제였기에 복음화에 대한 교육을 각 지구로 돌아다니면서 하였습니다. 교재는 반장학교 1 단계, 2단계, 3단계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지만 두 가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첫 번째는 ‘죄인까지 품어 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들도 자기들의 자식은 사랑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인까지 품어주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예전에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가사 중에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미가 어찌 젖먹이 아이를 잃어버리겠느냐? 설령 어미가 자식을 잃어버릴지라도 나는 너희를 결코 잃지 않겠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습니다. 죄인일지라도, 이방인일지라도, 마귀 들린 사람일지라도, 아픈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모두 다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반하여 다락방에 숨어 있을지라도 제자들에게 ‘성령과 평화’를 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수난과 고통까지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성인과 성녀들은 바로 이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수난과 고통까지 감수하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끝까지 믿어 주는 사랑’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님 제 이웃이 제게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충분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 비록 둘째 아들이 유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 왔을지라도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반지를 주고, 잔치를 벌여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섯 번째는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동굴이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누일 자리조차 없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열정적인 사랑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화의 4가지 요소입니다.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그저 독서 토론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는 강론은 진정한 강론이 아니라 사제 개인의 넋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곧 활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도는 샘이 깊은 물과 같고, 기도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피땀 흘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입니다. 지역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소공동체의 모임은 그저 신심단체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구원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지역이 활성화 되면 본당은 더욱 활성화되기 마련입니다. 네 번째는 ‘활동’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실천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은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실천이 없는 소동동체 모임은 그저 친목단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묵상하며 복음화의 4가지 요소를 삶으로 실천하는 성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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