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제 cpbc 유튜브 충격적인 뉴스를 보고서 느끼는 단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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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3-24 | 조회수18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어제 안타까운 뉴스를 봤습니다. 평화방송의 뉴스입니다. 과거에는 사제였는데 지금은 교회에서 파면되었던 일반 사람이었습니다. 방송을 보니 2011년에 면직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파면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파면됐으면 일반 신자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자숙하고 살아야 할 사람이 이상한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기가 몸담았던 공동체 사람들을 이끌어내 문제를 일으킨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해를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제가 되려면 약 10년의 세월이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세상에서 고작 살아야 흔히 요즘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보통 평균 여든 넘어가면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됩니다. 어떤 이유로 파면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려운 난관 끝에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품 받았을 때 하느님께 맹세를 했었건만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맹세를 한 이상 남자라면 끝까지 그 길을 죽은 한이 있더라도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세상사 살다 보면 중간에 추진하다가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사제도 사제로 살다가 중간에 성소가 아니다 싶어 환속을 할 수도 있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파면됐다는 것은 환속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금이야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파면될 무렵에는 수많은 갈등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정도까지 갔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을 보듯 바보가 아닌 이상은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는 사제의 신분을 떠나 어떤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습니까? 파면되기 직전에는 제대로 된 판단력과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어쩌자고 이런 지경까지 왔는지" 후회가 막급했을 겁니다. 저는 파면된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은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은 제가 비난을 할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느님 대전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달게 심판을 받으면 될 것입니다. 그건 하느님의 몫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어제 낮에 한 교우를 만났습니다. 교우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이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사제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제였다면 절대 그런 일까지는 갈 수가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뭐 특별하고 대단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사제의 신분이었으면 사제로 잘 살 수 있도록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런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쓰는 이유는 이 파면된 사제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사람을 보고서 우리는 파면과 같은 것은 거리가 멀지만 물론 평신도도 교회에 엄청난 잘못을 하면 교회로부터 파면되는 것을 전주교구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그와 같은 사례는 지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하나의 반면교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제는 중도에 파면이라도 돼서 그나마 났습니다. 물론 나가서 물의를 일으킨 것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 같은 일반 신자인 경우에는 죽을 때까지 파면도 되지 않기 때문에 만약 그때까지 이 사람처럼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결말이 어떨 것 같습니까? 여기서 이 사람처럼이라고 했을 때 처럼은 바로 평상시에 우리는 일반 평신도로서 그에 합당하게 부족하지만 잘 살아가고 있는지 체크를 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았을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걸 평소에 하지 않고 그냥 시계추처럼 아무 생각없이 성당 마당만 밟고 다니는 신자로 살게 된다면 어쩌면 차라리 일찍 파면선고가 내려진 이 사제보다도 더 불행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당 마당만 밟고 다닌 신자로 살았다고 해도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을 만큼의 생활을 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불행한 삶이 될지는 조금만 묵상해본다면 그냥 답이 나옵니다. 저도 혹여나 이렇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사제도 처음부터 그랬겠습니까? 처음에는 서품받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성인 사제는 둘째치고 훌륭한 사제로 살다가 하느님을 만나겠다는 포부를 품지 않았겠습니까? 그랬던 사람이 그렇게 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바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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