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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종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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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25 조회수231 추천수5 반대(0) 신고

 

-예수님 살기, 예수님 닮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성주간 월요일 복음의 주인공은 단연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쏟아 부은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찾았던 환대의 집, 베타니아집에 살았던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였고,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또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했던 삼남매였습니다. 이중 마리아의 주님의 종,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가장 뛰어납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로다.”

화답송 후렴의 고백은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는 물론 우리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상징하는 바 참으로 주님의 종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입니다. 제 옛 자작시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대로 주님의 종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 고백처럼 생각됩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며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며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은총의 성주간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무려 26년이 지났어도 참 많이 인용했던 시요,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도 분명 이러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종,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한 듯 마리아는 사랑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말그대로 한폭의 살아 있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화같은 장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했다.’

 

순 나르드 향유 냄새가 상징하는 바, 마리아의 향기, 사랑의 향기, 존재의 향기, 겸손의 향기 같습니다. “난같은 당신”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바로 마리아가 그러합니다.

 

“당신 존재의 향기

 사랑의 향기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있음자체만으로 

 향기롭고 평화로운

 난같은 당신, 마리아입니다.”-1998.3.37

 

흡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던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가, 또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드리던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이 연상되는 참 거룩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가 말하는 주님의 종은 그대로 마리아가 참으로 사랑했던 예수님이심이 환히 계시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참으로 하느님의 전폭적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주님의 종, 예수님에 대한 하느님의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종, 예수님의 모습은 마리아는 물론 사랑의 관상가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 모든 이들의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공정을 펴리라.’

 

한결같이 자비롭고 섬세하고, 성실하고 공정하고, 고요하고 자상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하느님을 고스란히 닮은 주님의 종, 예수님의 모습이자 믿는 모든 사랑의 관상가들이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종을 참으로 사랑하시는 다음 하느님의 모습도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이런 하느님을 잊어버려, 잃어버려 자초한 인간의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새삼 이런 하느님을 경외하고 흠숭하고 찬미하고 감사함이 우리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며 살길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관상가, 신비가, 영성가로 불림 받은 우리의 보편적 성소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사명을 부여받는 주님의 종은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주님의 종들, 세례받아 주님의 종, 주님의 자녀가, 복음의 일꾼이 된 우리 모두를 향합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우리를 무지와 허무에서 해방하는 복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종 예수님을 모심으로 무지의 눈이 열려 보게 되고, 무지의 감옥, 무지의 어둠, 허무의 감방에서 해방되어 우리 역시 주님의 종이 되고 참 자유인이 됨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참으로 자유로운 주님의 종이 되어 살게 합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을 꿰뚫어 본 주님의 종, 사랑의 관상가가 오늘 복음의 주인공 마리아입니다. 누구보다 주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의 신원을 깊이 깨달아 알았고 이심전심 참으로 마리아를 사랑했던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최측근에 속했으면서도 장차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넘길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과는 극명히 대조됩니다. 말그대로 영적으로 눈먼 유물론자 유다입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사랑에 눈멀었기에 이런 계산이요 판단입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어찌 사랑을 계산할 수 있겠는지요. 유다가 보기에 마리아는 참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쳤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물론 우리는 압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임을!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했다 합니다. 

 

다음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으로 사랑했고 자신이 참으로 사랑했던 사랑의 관상가 마리아를 더 이상 제발 괴롭히지 말라 당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 어른 거리는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를 죽이기로 결의했고, 주님의 종 예수님의 생명도 풍전등화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리아의 사랑의 향유 추억을 간직하고 주님의 종 예수님을 닮은 향기로운 주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 안에 늘 현존하는 주님이시오, 가난한 이들을 통해 늘 만나는 주님의 종, 예수님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마리아처럼 사랑의 관상가. 주님의 종, 주님의 빛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27,13-14).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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