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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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3-26 | 조회수10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성주간 화요일] 요한 13,21ㄴ-33.36-38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호주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원래 영국이 자국의 죄수들을 수용하기 위해 식민지로 삼은 곳이라고 합니다. 자국에 있는 죄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면 영국엔 좋은 사람들만 남고 그렇게 진정한 평화 속에서 번영을 누릴거라 기대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호주의 모습은 어떨까요? 부유하고 여유로우며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영국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을 정도입니다. 죄인들을 잔뜩 받아들였으니 ‘생지옥’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지요. 세상에서 죄인들을 다 없애버린다고 진정한 평화가 오는게 아닙니다. 평화란 서로 다른 사람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이 서로를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이해와 포용으로 받아들이며 한데 어우러져 살아갈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에 관대하고 포용적인 모습이 지금 호주가 누리는 번영과 평화를 만든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복음 선포라는 중요한 사명을 맡기실 사도를 뽑으실 때, 능력이 뛰어나고 잘난 사람만 뽑지 않으셨습니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생각,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을 뽑으셔서 그들이 당신과 함께 살며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셨지요. 그랬기에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죄를 지어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포용적인 사랑이 오늘 복음에서 드러납니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마음이 심란해진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과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하던 이들 중 하나가 그분을 배신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제자단의 대표로 세우신 베드로가 당신과의 관계를 무려 세 번이나 부정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유다에게는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라며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그가 앞으로 저지를 일을 미리 알려주시며 대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복음 내용에서는 빠져 있지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그렇습니다. 사랑의 계명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주어진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람을 팔아넘기려 계략을 꾸미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잘 따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주눅드는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죽더라도 제발 이거 하나만은 지키라’며 예수님이 남겨주신 비장한 ‘유언’이었던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눈치를 보거나 계산하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제한 없이,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 형제 자매를 그렇게 사랑해야겠습니다. 그 사랑을 통해 내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제자임이, 그분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임이 드러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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