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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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3-26 | 조회수16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3월 27일 수요일 [성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건네줄 결심을 하고, 누군가는 상대를 팔아넘길 결심을 합니다. 이 불공평한 관계는 비단 예수님과 유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은 우리 주변에도 때로 발생하니까요. 뉴스는 거의 날마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편리를 위하여 아기를 팔고, 딸을 팔며, 약자를 파는 사건을 보도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사랑을 팔아 버린 유다가 받은 돈은 겨우 “은돈 서른 닢”이었습니다.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라는 문장을 그리스 말 성경에서 그대로 옮기면 “무엇을 나에게 줄 거요? 내가 당신들에게 그를 넘기겠소.”입니다. ‘무엇을’이라는 그리스 말 의문사를 문장의 첫머리에 배치하여 ‘거래’라는 인상을 먼저 부각시킵니다. 사실 성주간 월요일부터 계속 복음에 등장하고 있는 유다는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냄비나 접시에 담긴 음식을 서로의 숟가락이나 젓가락에 신경 쓰지 않고 함께 먹는 것처럼, 유다인들도 친한 관계에서는 비슷한 식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친밀함’을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이용하고 배신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아무개”(그리스 말 ‘데이나’)라는 낱말이 등장합니다. 병행 구절(마르 14,13; 루카 22,10)이 그를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로 명시한 것과 달리 마태오 복음서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 않아 그 “아무개”가 우리 자신일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습니다.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파스카 식사를 하실 자리를 ‘아무개’에게 부탁하셨듯이, 우리 안에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드실 만찬을 마련하여 드리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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