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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2부 내맡김의 비법과 진리 04 당신은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가? 2010. 03. 03.
당신은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가? 또 아니면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가?
하느님의 무엇을 믿는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당신은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애정’이 오가야 한다. 한쪽만 애정을 주면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사랑이란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이 계심을 굳게 믿는다 하여도 그것을 ‘믿음’이라 말할 수 없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믿음이라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을 믿고 우러러 사모하는 것이 바로 ‘신앙信仰’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엄청나게 사랑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해야 참사랑이, 참믿음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가? 정말로 사랑하는가? 정말로 믿는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정말로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당신은 하느님을 그렇게 사랑하는가? 그렇게 사랑한다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정말이다!
하느님과 우리 인간과의 사랑은 우리 인간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한없이 벅차오르고 늘 뿌듯하며, 하느님 때문에 한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하느님을 생각할 때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한없이 눈물이 나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행하며, 하느님 때문에 사는 의미가 있다.
‘하느님 생각’이 한시라도 내 머리를, 내 가슴을,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아니, 하느님이 떠나시지 않는다. 나의 온 영혼을 채우고 계신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의 소중한 몸을 내맡긴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의 전 일생을 내맡긴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행복하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당신은 그렇게 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놀이’를 할 뿐이다.
모든 ‘놀이’는 한계가 있다. 종교놀이는 재미가 없다. 지루하기만 하다. 활력이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신앙생활은 한계가 없다, 끝이 없다. 죽은 후에도 계속된다, 아주 영원히 말이다. 신앙생활은 너무너무 설레고 재미있고 활력이 샘솟는다. 미칠 정도로 기쁘고 기가 막히게 감사하다. 하루하루가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새롭다. ‘신비의 생활’이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이제 오랜 종교놀이를 끝내야 한다. 지금 끝내자!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청했듯이, 간절히 애원하며 청했듯이, 하느님께 간절히 사랑을 청해야 한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라고 말이다.
이 짧은 기도 소리가 하느님 앞에 끊이지 않게 될 때, 언젠가 하느님께서 그 소리를 들어주신다. 하느님과의 ‘사랑이 성사成事’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모든 것을 그분께 내맡기고 그분의 이끄심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죽을 때까지, 아니 그분을 두 눈으로 직접 뵐 때까지 그 사랑은 무르익어만 간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서로 닮아 간다. 마침내 하느님처럼되어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하느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 우리가 하느님[神]이 되는 것이다. 존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의 ‘창조 목적’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체험’이다.
남이 말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내 몸으로, 내 영혼으로 하느님을 체험해 보자.
하느님을 사랑해 드리자. 뜨겁게 뜨겁게! 아주 뜨겁게!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책 구입 문의: '끊임없는 기도모임' 카페 http://cafe.daum.net/Praywithoutceasing 구입처 *** 1.직접 구매 가능 성바오로 서원 ☎ 02 945 2972 ※지역 성바오로 서원 (부산 , 대구 , 청주 , 제주 , 수원 ) 2.끊임없는 기도모임 사무실 (명동 가톨릭회관 333호 ☎ 070-7785-3330) 3.온라인 구매 성바오로인터넷 서점 (https://paolo.kr)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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