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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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02 | 조회수464 | 추천수9 | 반대(0)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헬렌켈러는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날. 나는 나에게 친절과 따뜻함, 그리고 우정을 통해 나의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 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둘째 날, 새벽 여명과 함께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며 지구가 깨어나는 그 경이로움을 지켜보고 싶다. 마지막 셋째 날. 다시 나는 일찍 일어나 동트는 아침을 지켜보며 이날의 새로운 계시를 체험하고 싶다. 이날 나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밤중이 깊어가 나의 마지막 밤이 문을 닫을 때 나는 이 사흘간 보았던 모든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감사할 것이다.”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감격이고, 경탄입니다. 마찬가지로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단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감격이고, 경탄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자 평생 걷지 못했던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날 걷지 못했던 사람은 결코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뉴욕에서 왔을 때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댈러스에는 볼 것이 별로 없답니다. 운동도 골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댈러스에 와서 1달이 지났는데 댈러스에는 볼 것도 많고, 운동할 것도 많았습니다. 사제관에서 성당까지 차로가면 5분이지만 걸어가면 50분이 걸립니다. 매일 성당 갈 때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새벽의 바람과, 오전의 바람 그리고 오후의 바람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대형을 유지하며 날아가는 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모양의 구름, 양 모양의 구름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가로질러가는 뱀도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제법 온 날에는 둑 가까이 불어난 물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벽에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껑충껑충 뛰어가는 토끼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새벽 숲속을 걸으면 산책 나온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길을 청소하는 차량도 볼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기도하고, 걸으면서 강의를 듣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1달이 조금 넘었는데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댈러스는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제게 보여 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고, 함께 할 공동체가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물리적인 시간)은 어쩌면 단조롭고, 심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의미의 시간)은 언제나 감격과 감탄의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에서는 사제관에서 성당 가는 길이 곧 엠마오입니다. 절망과 두려움에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은 말 그대로 충격, 경악, 감탄,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시작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시작 되었을 지라도 곧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박해와 고문과 죽음을 계속 이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2000년 역사를 어어 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부활의 증거입니다. 박해와 고문을 받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당당하게 목숨을 바친 순교자의 피와 땀이 바로 부활의 증거입니다. 2000년이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라뿌니’라고 소리쳤던 마리아와 같은 감격과 감탄을 체험하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빵을 나누었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진한 감격과 감탄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헬렌켈러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크로노스의 시간에 머물지 않고 카이로스의 시간에 머물 수 있다면 우리는 뺨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흘러가는 구름에서도, 방긋 웃는 아이의 모습에서도,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의 땀방울에서도 감격과 감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우리들 또한 감격과 감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그런 마음으로 성가 461번 ‘엠마우스’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이까? 누추한 집이나 따스하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을 이 집에 모셔 들이면 기쁨에 겨워 가슴 뛰오니 길에서의 얘기, 마저 하시며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우리와 한 상에 자리하시어 주님의 빵을 떼시옵소서. 가난한 인생들 소원이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밤바람 차갑고 문풍지 떠나 주님의 음성이 호롱불 되고 주님의 손길은 따뜻하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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