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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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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03 조회수179 추천수7 반대(0) 신고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루카 24,13-35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걸고 따랐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무덤에 있던 그분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에 혹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그분의 시신이 사라져버렸으니 이젠 부활이고 뭐고 다 틀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또한 예수님을 죽인 반대세력들이 그 추종자들을 잡기 위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찾아다니고 있으니 두렵고 불안하기도 했겠지요.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갈 땐 ‘금의환향’의 기대와 희망을 가득 안은 채였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실의와 좌절에 빠진 ‘낙향’길이었으니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겠지요.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과 함께 걸으십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이 뭔가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렸을까요? ‘주님은 이러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들의 눈을 가려 실망을 만들고, ‘메시아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려 절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망과 절망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그분이 돌아가시는걸 자기들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기들이 직접 만나본게 아니니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과 의혹에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십니다. 가시는 도중에 그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시기도 하고, 성경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메시아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가르쳐주시기도 하면서 몇 시간을 함께 보내신 것이지요. 그 두 제자만을 위한 특별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신 셈입니다. 그들의 무지와 불신에 호통을 치시기도 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생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한 과정임을 알려주시면서 그들의 마음에 참된 희망을 심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만을 위한 말씀의 전례가 끝나갈 무렵, 날이 저물고 어두워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두 제자와 함께 숙소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십니다.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성찬의 전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지요. 사실 그 식사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으로 나누셨던 ‘파스카 식사’와는 다른, 그냥 평범한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빵을 떼어 주시는 그 모습을 보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렸고, 그렇게 자기들 앞에 계신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님은 그들의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앞에 계시지 않아도, 주님께서 언제나 자기들과 함께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두 제자처럼 말씀의 전례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성찬의 전례에서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마음 속에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동이,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총과 사랑에 대한 감사가, 그런 그분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우러나오고 있는지요? 우리는 미사라는 기적의 현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주님을, 그분의 뜻과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붙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하고 그분을 붙들었던 두 제자들처럼 마음을 열어 그분을 꼭 붙들고 있는지,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온전히 머무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붙잡기만 하면 언제든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며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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