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사람이 있고, 드러난 사실 안에서 진실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안에서 그 의도, 본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존경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실은 물론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왜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뿐 아니라 진실을 모르면서 갖은 추측과 추정을 통하여 사실인 것처럼,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말이 많습니다. 그야말로 떠도는 말, 입에 발린 말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 안에서 진실을 보는 지혜로운 처신과 절제된 침묵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황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생각을 전제하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부의 얘기이기 때문에 사적인 얘기로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고 다음에 알려 주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은 기대를 채워줄 수 없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책임을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미사를 도와주는 어린 복사가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빨강이예요? 파랑이예요? 얼떨결에 하얀색!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고 천주당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었고, 무덤에 묻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유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자기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몸을 알아보려면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보아라,” “만져 보아라.” 고 하셨습니다. 혹 눈으로 환상을 본 것 같으면 직접 만져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지 못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드시고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음식을 잡수신 것을 보면, 부활한 몸이 실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닙니다.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시고 하는 것을 보면 모든 한계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고 가시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주님께서 먼저 눈을 열어 주실 때까지 그분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알아 뵈려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아는 것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만 크게 되면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되고 맙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 결국 유령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한결같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옛날의 허물을 들추어낼 수 있을 정도로 속이 좁은 분도 아니셨고, 그저 믿음을 키워주지 못한 것이 안쓰러울 뿐이었습니다.
저놈은 나를 배신한 놈인데, 저 사람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인데…손해를 끼친 저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하며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아픔들이 나를 지배한다면 예수님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들먹이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24,47). 고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분 안에서 큰 품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성실히 감당할 때 믿음의 눈이 더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