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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체험이 없으면 용서의 능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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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06 조회수22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부활 제2주일 곧,하느님의 자비 주일

 

 

 

<부활 체험이 없으면 용서의 능력도 없다> 

 

 

 

 복음: 요한 20,19-31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용서의 능력’입니다. 용서는 내가 죽는 일입니다. 자발적으로 죽을 수 있는 경우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농부가 열매의 기쁨을 상상하지 않으며 농사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마리아 고레띠 성녀는 자기를 무자비하게 찌른 사람에 대해 “저는 그 사람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대한 희망 없이 나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 사람을 용서했는데 “내 딸이 용서했으니, 나도 자네를 용서하네.”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딸은 천국에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고정원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일가족을 살해한 유영철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부활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 아내가 천국에 있는데 자신이 용서하지 못해 지옥 가면 아내를 영영 만나지 못할까 봐 용서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부활에 대한 희망 때문에 용서가 가능한 것이지, 유영철이 사랑스러워서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부활에 대한 믿음은 용서의 능력과 하나입니다. 

 
    어떤 형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임금으로부터 사면장을 들고 사형 선고를 받아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왔습니다. 혹시 풀려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형의 말에 동생은 먼저 판사를 죽이고 그다음엔 자신을 신고한 이를 찾아가 죽일 것이라 말합니다. 형은 동생을 사면할 수 없어 나오면서 사면장을 찢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 결정적인 시기가 부활하신 당신을 만나고 믿게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는 권한이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보이시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중풍 병자를 치유하고 용서하실 때 사람들은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태 2,7)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실 수 없다고 믿고 개신교도 그래서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용서한다는 것은 나를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죽어야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요한 5,18 참조). 

 
    용서를 위해 목숨을 걸려면 부활에 대한 확신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당신을 보여주시며 동시에,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는 성령의 힘을 주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파견하실 때 당신이 보내셨다는 증거로 ‘지팡이’ 안에 힘을 넣어주셨던 것과 같습니다. 조선 시대 임금이 암행어사를 파견할 때 마패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때 빠진 사도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토마스’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도들에게는 성령과 함께 성령을 통한 죄를 용서할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 다른 제자들처럼 죄사함의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죄사함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이미 용서하는 권한이 주어졌음을 부활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토마스 사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 각자도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죄를 용서하는 예식을 통해 이 많은 사람이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는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보고 교회가 그리스도 부활의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보지 않고 믿는 법입니다. 

 
    사제들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개혁 사명을 믿지 않자 성녀도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나는 이 은혜가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 25,19)라고 말합니다. 
교회도 온 세상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교회는 죄를 사해주는 권한에 조금도 물러섬이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지금도 바라보고 있는 가장 완전한 증거가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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