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루카 1, 26 - 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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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4-07 | 조회수18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31.38) 성모 영보領報 대축일에서 ‘예수님의 탄생 예고豫告’ 대축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초점이 성모님께서 잉태하셨다는 관점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날 것을 예고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축일 무게의 중심이 오늘 축일의 근본 혹 뿌리로 되돌아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2007년 세 번째로 방문했던 나자렛의 <탄생예고성당 지하 소성당 제대>에는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아하즈에게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7,14) 는 예언을 통해 예고하였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어 하느님께서는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1,27.28)하고 전하셨습니다. 이 예고엔 무엇보다 먼저 마리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자각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시고, 은총과 사랑으로 주님께서 함께 머물고 계시다, 는 깨달음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은 “몹시 놀랐다.” (1,29) 이 놀라움은 두려움이 아닌 경외심과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이었기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곰곰이 되새겨야 합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불리실 것이다.” (1,30~1.32) 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알립니다. 천사의 발현도 그렇지만, 천사를 통해 알려준 하느님의 뜻은 도저히 마리아의 생각과 의지를 뛰어넘는 참으로 놀라운 예고였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 곧 여성의 조건에 따른 한계를 지닌 마리아이기에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1,34) 라는 질문은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고 이는 곧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실존적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의문은 역설적으로 이후 천사의 대답을 통해 밝혀질 마리아의 동정 잉태에 대한 가능성을 열게 된 질문이라고 저는 느껴집니다. 즉,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1,35) 이 전언이 바로 오늘 교회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의 기원이고 근거가 되는 강생-육화 신비의 핵심입니다. 그러기에 이 예고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응답은 바로 성모 영보의 요체인 마리아의,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38) 라는 말씀 안에 온전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응답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놀라운 구세 경륜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신 성모님의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이 응답은 구세사의 특이점(=응답 이전과 이후의 차이)의 순간입니다. 마침내 하느님의 뜻이 곧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사람이 되기 위해 여인의 몸에 수태된 은총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로써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탁월한 구원의 연장이자 도구가 되었으며,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고 구원의 중재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신 성모님의 생애는 그 순간부터 늘 언제나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려는 삶’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살고자 하는 믿음과 순종의 삶은 훗날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꽃을 피우게 되고 완성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따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성령의 정배가 되신 것은, 모두 다 성모님의 믿음과 순종의 결과였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또한 우리 어머니 마리아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라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중재의 기도가 우리 마음 속에서부터 바쳐질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늘 대축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주님의 축복이 그리고 성모님의 중재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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