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웅렬 신부님_향주 삼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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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08 | 조회수21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퀴즈를 내겠습니다> 하느님을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며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신앙의 끈이며 교황이나 주교나 사제도 이것 없이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냉담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뭐라고 부를까요? <힌트> 이것을 다른 말로 ‘대신덕’ 또는 ‘기초덕’이라고 하며 제가 피정 때마다 참으로 많이 한 주제입니다. <네, 향주삼덕입니다.>
향주삼덕이 뭐예요? 신덕, 애덕, 망덕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신, 망, 애’ 라고 하지요?
장님인 소년이 눈이 멀었다 하더라도 연을 날릴 수 있지요? 그것은 장님소년과 연 사이에는 연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덕, 망덕, 애덕은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연줄과 같은 것이지요.
신덕, 망덕, 애덕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신덕의 핵심은 순명이고, 망덕의 핵심은 기쁨이고, 애덕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 바로 향주 삼덕의 본이었어요. 향주삼덕의 삶을 살면 찾아오는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영적변화’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변화하셨습니다. 사순절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부활은 바뀌는 것, 쉽게 풀이하면 ‘영적변화’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부활하셔서 성부 오른편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부활시키려고 사순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 사순절이며 그 기초가 향주삼덕입니다.
향주삼덕을 살면 의지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변화가 되게 되어 있어요. 첫 번째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요.
천주교신자 열 명중 일곱 명은 “구원 받으셨어요?” 하고 물어보면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른다고 해요.
개신교신자들은 부흥회 몇 번만 다녀와도 난리가 나요. ‘나 구원받았다~’ 고 동네사람 다 끌고 나가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세례 때, 물과 성령으로 구원받았고, 그것도 모자라 개신교 신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견진 때, 성령칠은의 갑옷까지 받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은총으로 코팅이 되어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끌려 다니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앙케이트 조사를 해보니 고해성사가 부담스러워 주일 지킨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미사 때, 사제의 말씀으로 하느님이 빵으로 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하느님이 몸 안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끓고, 눈물이 앞서서 그 미사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겠습니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봉헌 때, 지갑 열어서 천 원짜리 찾느라고 정신없지요. 우리 주님은 신사임당 만나서 면담하면 안 되나요?
놀랍게도 천주교신자는 90%가 감사예물이라는 것을 봉헌하지 못한대요. 개신교 신자들은 90% 이상이 감사예물을 봉헌한대요. 저는 오히려 개신교신자에게 감사예물을 받은 적이 더 많아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늘 주면서도 아까워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늘 드리면서도 모자란 것, 그 차이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봉사하는 것도 소극적이고 전교하는 것도 소극적이고, 교우들끼리 친교 하는 것도 늘 소극적이에요. 공동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없는 사람 무시하며, 잘난 척~ 하지요.
향주삼덕을 기초로 사는 사람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전례, 봉사, 전교, 친교에 균형을 잡습니다. 아멘
향주삼덕을 살면 두 번째로 능력의 변화가 옵니다. 그 전에는 자신의 학력, 권력, 지식들을 자랑하던 사람이 십자가만 자랑하게 됩니다. 부담스러웠던 십자가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담대하게 증거 합니다. 버스 안에서도 십자가 긋고, 삼종기도 바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외인들과 밥을 먹으면서 누가 놀리건 말건, 십자가 긋고 끝기도까지 해요.
십자가라고 다 같은 십자가는 아닐 거예요. 신앙인이 아닌 사람도 액세사리로 십자가 목걸이 걸고 다녀요. 향주삼덕을 가지고 사는 그 집의 십자가는 마귀가 무서워하지요.
세 번째로 향주삼덕을 가지고 살면 하느님의 법을 따르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 창세기 12장 1절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뭐라고 그래요? ‘네 집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여러분 같으면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어딘지도 모를 그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향주삼덕이 있었기에 그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무조건 하느님이 가리키신 방향만 향해서 떠났어요.
막상 가나안 땅에 가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먼지만 ‘풀풀~’ 나는 박토였지만 아브라함은 신덕의 핵심인 순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이 제일 힘든 길 같지만 산꼭대기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내가 왔던 그 길이 가장 편한 길이에요.
어느 자매가 세례를 받고 보니, 세상사는 게 그전보다 더 힘들어졌어요. 첫 번째 낙태를 못 하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 애가 다섯이나 되었고, 양심대로 장사를 하다 보니 수입이 줄어들었어요. 유혹을 물리치면서 아이 다섯을 데리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면서열심히 살았더니 그 다섯 가운데 사제가 둘, 수도자가 하나 나왔어요.
믿음을 통해 바라는 것이 재물과 건강, 현세적으로 병이 낫고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이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추세입니다. 그것이 다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십자가의 의미는 사라지고,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 수많은 난관을 넘어왔던 것처럼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예수님도 수난과 죽음이라고 하는 골짜기를 건너야 부활이라고 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예수님의 인성으로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격려와 힘을 받으십니다. 부활할 때까지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모세와 엘리야갸 와서 “힘내세요, 저희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는 동안 두려움에 그늘진 얼굴이 빛보다도 더 밝은 얼굴로 변화되었어요. 성령 충만한 두 예언자를 만나고 나서 예수님은 변화되십니다.
우리도 구체적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내 작은 악습하나라도 고쳐서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찬 영혼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내어 하루를 삽시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베드로와 야고버는 깊은 잠에 빠져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이렇게 나와요. 베드로가 졸다가 예수님이 만난 은총의 시기를 놓친 것처럼 하루 하루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변화합시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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