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분과 늘 함께하는 자세야말로 / 부활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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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4-09 | 조회수18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분과 늘 함께하는 자세야말로 / 부활 제2주간 화요일(요한 3,7ㄱ.8-15)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너희가 어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올려 져야 한다. 그리하여 믿는 이는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의 삶을 마치 세속적으로만 따지며 늘 고민에 빠진 의회지도자 니코데모에게, 영원한 생명의 믿음을 일깨워 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이 언젠가는 꼭 들어 올려 져야만 한단다. 죽음을 통해 자신을 봉헌하신다는 말이리라. 그러므로 영적인 이에게 내적 생명은, 늘 봉헌하는 그 자리에 다가가는 것일 게다. 그런 이를 주위에 모시며 가까이 하면, 느낌마저 확실히 다르다. 밝은 분위기가 스민다. 하느님 기운이 있기에. 우리도 그런 이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예수님 삶을 따르는 것이니까.
이런 삶을 누리는 게 어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자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문제도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만 될 게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게 부닥친 문제만을 바라보면서 해결책을 찾는다. 하느님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만 되리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삶이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주님께서는 양심을 통해 우리를 일깨우시고 당신 말씀을 전하시기에. 사실 고통에서 예외인 자는 없다. 아무리 신심이 깊어도 ‘삶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고달프다. 따라서 열심히 사는 것과 시련은 늘 별개이다. 가끔은 심한 실패도 겪는다. 누가 봐도 억울한 일을 당한다. 주님께서는 멀리 계시는 듯하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깨달음’이 있다. 내가 아파 보지 않으면, 남의 아픔을 잘 모른다.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은 언제나 주님의 이끄심에 좌우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하늘의 법칙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은총은 철저하게 주님의 뜻일 게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유혹은, 바로 이런 신앙으로의 회귀가 구체적인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의심하는 것이다. 이 유혹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 이다. 우리는 세례로 하느님 자녀가 되었고 그분께 갈 것임을 알기에, 세상에서 죽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하느님 아들이다. 그래서 비록 세상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일깨워 준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돌아갈 뵐 그분을 매순간 기억하며 어둠이 아닌 빛의 길을 걷자.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만이 매 순간 우리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고 말이다. 이렇게 그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삶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믿는 이만이 진정 성령으로 태어난 믿는 이다. 그분 안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꼭 새길 마음가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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