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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성 스타니슬라오 순교 기념(부활 제2주간 목요일): 요한 3, 31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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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10 조회수2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아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예수님께 맡기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3,35~36)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제 어머니를 아는 분이나 만났던 분이 계시나요? 누군가 혹시 제 어머니를 아는 분이 계시겠지만, 저만큼 또는 저보다 더 잘 아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아빠 하느님을 아시는 분은 그러기에 아빠 하느님에게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만큼 혹 예수님보다 더 잘 아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아빠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에게서 들으신 것을 증언하십니다.” (3,32) 그런데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3,31) 알고 말하겠지만, 위에서 오시고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것을 알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아빠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3,33)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은 진리이신 아빠 하느님, 곧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기”(3,34)에 그리고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34) 더 나아가서 “아빠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예수님의 손에 내주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3,35~36) 믿는 사람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단순한 관념 이상이며, 오히려 사랑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이며 관계입니다. 즉 복음의 기쁜 소식은 공고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그 인격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이런 인격적이고 사랑의 관계에서 참된 믿음의 표현인 순종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오늘 복음을 부활의 시선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으며,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활동이 이를 입증해 줍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고 깨닫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해답이며, 이 믿음은 위에서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증언을 믿고 순종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까닭은 아빠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고,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아빠 하느님의 구원 경륜은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체험한 사도들은 방해와 박해 속에서도 대담하게 이를 선포하자 최고 의회와 대사제는 위기를 감지하고 이렇게 당부합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사5,28) 하고 겁박하고 중단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5,29) 하고 증언합니다. 덧붙여서 사도들은 최고 의회 의원들과 대사제에게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0.31) 사도들의 증언을 듣고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부활하신 그분을 믿어 수많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3,36참조) 하지만 예수님의 증언도 믿지 않았던 최고 의회 의원들과 대사제는 사도들의 증언 또한 믿지 않았으며, 순종하지 않았기에 생명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3,36참조) 이처럼 사도들은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순종으로 고백하고 이로써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복음 환호송)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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