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2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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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11 | 조회수437 | 추천수6 | 반대(0) |
1991년 사제서품을 받고 33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은 대부분 지금은 없거나, 다른 것들로 바꾸었습니다. 자동차는 르망, 엑셀, 아반테, 코란도, 소나타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 오면서 소나타는 필요한 분에게 주고 지금은 댈러스 한인 성당에서 마련해준 산타페를 타고 있습니다. 서품식에 축성 받았던 성작은 교구청에서 근무하면서 복음화 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컴퓨터는 데스크 탑을 쓰다가, 2000년부터는 노트북으로 바꾸었습니다. 가볍고, 휴대하기에 편하기 때문에 노트북을 선호합니다. 지금은 노트북 3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제관에 하나는 집무실에 하나는 여행 갈 때 사용합니다. 노트북은 제게는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강론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은 1995년부터 사용했습니다. 30년 동안 11개의 핸드폰을 사용했습니다. 책은 읽으면 원하는 사람에게 드리기도 하고, 대부분 놓고 왔습니다. 2번 이상 읽는 책은 성경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33년 동안 제 곁에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서품식에서 입었던 ‘서품제의’입니다.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랬지만, ‘서품제의’ 만큼은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 입고 갈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없거나 바뀌었듯이 저의 외모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모하면 좋겠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조금씩 익어가고 있습니다. 염색을 했던 머리카락은 팬데믹을 지나면서 하얀 머리카락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발의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2006년부터 안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경은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33년 전의 모습을 앨범에서 보면 새 사제의 모습입니다. 열정과 패기는 있지만 멈춰야 할 때를 몰랐던 젊음이 보입니다. 지금 핸드폰에 저장된 모습을 보면 열정과 패기는 줄었지만 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구분하는 원숙함이 느껴집니다. 거룩한 변모는 아니지만 이 시간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33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하느님께서 제게 숨을 불어 넣어주신 ‘마음’입니다. 때로는 유혹에 몹시 흔들리는 마음입니다. 욕심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려는 마음입니다.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두려움 때문에 물속으로 빠져들었듯이, 두려움과 근심 때문에 지금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늘 그렇듯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며 나의 허물과 잘못까지도 품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백성에게 존경 받던 가말리엘이라는 율법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막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막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들은 하느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오히려 명예롭게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강력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질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의 욕망이라는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욕망 때문에 전쟁과 폭력이 벌어지고, 그 욕망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생명이 죽어가기도 합니다. 혹시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저는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하고, 풍족하고,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기에 영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좁은 문’은 아닙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두개의 깃발’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의 깃발입니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나눔과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겸손과 인내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섬김과 상생입니다. 그 깃발 아래 있으면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습니다. 사탄의 깃발아래 있으면 모두가 먹고도 충분히 남을 보리떡이 있어도 10억 명은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모이는 것입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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