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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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13 | 조회수403 | 추천수8 | 반대(0) |
신문사에 있을 때입니다. 2024년 4월 2일에 ‘산티아고 꼼뽀스텔라’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신문에 성지순례 안내 광고를 냈습니다. 40여명의 순례자가 신청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많이 다녔지만 ‘산티아고’는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도 산티아고 순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다른 순례와는 달리 산티아고는 보는 순례가 아니라 걷는 순례입니다. 매일 3시간 이상을 걷기에 큰 어려움 없이 순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번에도 제게 산티아고 순례는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2월 13일에 인사이동이 있었고, 저는 ‘가톨릭평화신문미주지사’의 소임을 마치고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새로운 소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는 새로운 임지로 떠났습니다. 그동안 준비하였던 산티아고 순례는 후임 신부님이 가기로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의 아쉬움을 아셨는지 새로운 방법으로 산티아고에 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댈러스 한인 성당에서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는데, 전임 신부님이 인사이동으로 한국으로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게 성지순례를 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새로운 본당으로 온지 몇 달 되지 않았기에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보좌신부님이 다녀와도 된다고 하였고, 전임 신부님이 같이 가기로 했었기에 저도 성지순례를 가기로 했습니다. 주로 성모님 성지를 다녀오는 것인데, 그 길에 ‘산티아고’ 순례도 있었습니다. 온전히 산티아고 순례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식으로 제게 산티아고 순례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돌릴 수 없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굴 수 없다.’ 이는 시간은 흘러가는 것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아이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노년이 됩니다. 저는 이제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기쁨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친구를 만나 기억과 추억의 한 점이 됩니다. 이것이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머무는 우리의 삶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은 ‘순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순환하는 시간 속에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이 순환하는 시간 속에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이 순환하는 시간 속에 ‘축제’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 순환하는 시간에서 흘러간 물로 다시 방아를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환하는 시간에서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환하는 시간에서 ‘희망’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순환하는 시간에서 ‘다시 한 번’이라는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회개와 희망이 만나면 ‘기회’는 현실이 됩니다. 교회의 전례는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절이 매년 돌아오듯이 성탄과 부활은 매년 돌아옵니다.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림시기’를 지냅니다.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냅니다. 저는 2024년 ‘부활’을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맞이했습니다. 신앙인들은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은 순환하는 시간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기쁜소식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표징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의 강을 건너서 있는 먼 미래가 아닙니다. 부활은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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