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 6, 22 - 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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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4-15 | 조회수25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6,27) 이젠 조금 그 열기가 식은 듯 느끼지만, 여전히 ‘먹방’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이 즐겨 시청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한번 방송을 타고나면 그 먹거리를 찾아서 거리가 멀고 가깝고 관계없이 직접 찾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6,15) 산으로 물러가셨는데, 그다음 날 당신을 찾아낸 군중들이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6,25)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그토록 열심히 찾았을까요? 우리는 오늘 어떤 마음의 갈망으로 예수님을 찾아오셨나요?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갈망하며 인생의 길을 걷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 많은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헤매다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6,25)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5천명을 먹이심)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6,26) 하고 말씀하신 까닭은 그들이 빵의 기적을 통해 당신이 그들에게 가르치시고자 했던 뜻을 알지도 못했으며, 아직도 알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을 알아듣기 위해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6,27) 하고 가르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도 썩어 없어질 양식과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양식 가운데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하며, 어떤 양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지향과 삶의 질양質陽은 엄청난 차이를 빗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현세적이고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도록 표징을 보여주시고, 당신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성체)이심을 밝히셨습니다. 한세상 제대로 살기 위해 해야 할 일도 많고 시간도 부족한데, 먹고 또 먹어도 늘 배고픈 물질적 음식을 얻으려고 힘과 시간을 낭비하며 버릴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는데, 몸과 마음을 쏟도록 하라는 권고이며 초대인 것입니다. 그 양식은 이미 사마리아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4,32.34)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바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애쓰고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이 아닌 영원히 배고픔을 채워주고, 삶의 기아와 갈증에서 벗어나 넘치는 삶의 활력으로 새롭게 살고자 한다면, 무릇 자기의 뜻을 버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살라는 초대입니다.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린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알아차리고 이제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6,28) 하고 묻습니다. 이제 빵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의 변화와 숨겨진 갈증과 갈망을 향해 문을 살며시 열기 시작했기에 예수님은 이내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6,29) 하고 직접적으로 그 좁은 길과 좁은 문을 향해 나가도록 이끄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은 바로 예수님의 존재와 삶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며 주님께 온 존재로 내어 맡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독서의 스테파노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증거자입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은총과 능력으로 충만한 그는 많은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키고 참된 복음의 선포자로 충실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에 대한 최고 의원들의 거부와 배척의 순간에도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스테파노의 모습은 두려움보다는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사6,15) 거룩함으로 환하게 빛났던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화답송 후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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