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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제2부 내맡김의 비법과 진리
09 열려라 참깨, 만트라, 화살기도
2010. 03. 14.
‘생각은 에너지’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생각이 왜 에너지인가?
과연 생각이 에너지가 될 수 있는가?
에너지란 무엇인가?
아마 과거에는
이 말을 즉각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적었을지 모르겠지만,
가히 ‘신영성(뉴 에이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중에는
그 말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것이다.
에너지, 기, 초능력, 초염력, 파워, 파동, 진동, ○○요법 등등.
과거에 개인적으로 건강에 몇 차례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었다.
그 후 건강에 대한 서적을 자주 접했는데,
의외로 ‘기氣 Energy’에관한 서적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에너지, 기, 생각 등 위의 단어들과 연관 지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다름 아닌 이 한 문장이다.
“한 번 생겨난 모든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예수님께서도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혼자 생각했을 뿐이고, 그 생각은 곧 사라질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그 어떤 생각이든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든 생각에는
반드시 그것에 대한 ‘영향’이 남아 있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청소년이나 젊은이 사이에 발생하는
‘흉악한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절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나 인터넷에서 자주 접했던
폭력 게임이나 음란물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은 것이다.
눈으로 본 모든 폭력과 음란 장면이 두뇌에 그대로 새겨지게 되어
어느 순간에 외부로 드러나게 된다.
보는 것이든, 듣는 것이든, 말하는 것이든,
생각하는 것이든, 행하는 것이든
한 번 생겨난 모든 것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자기 혼자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것이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의 영향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모든 신앙인은 가려서 보고, 가려서 듣고, 가려서 말하고,
가려서 생각하고, 가려서 행동해야 한다.
그 영향을 다른 말로 ‘에너지,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이다.’, ‘바라봄은 에너지이다.’, ‘행위는 에너지이다.’,
그리고 ‘말은 에너지이다.’ 말하는 것, 그 자체가 에너지이다.
좋은 말은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고,
나쁜 말은 나쁜 에너지를 갖고 있다.
‘거룩한 말’은 거룩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거룩한 짧은 말 기도가 바로 화살기도이다.
화살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하느님 앞에 곧바로 전달되는 기도가
바로 ‘화살기도’인 것이다.
우리 교회의 오랜 전통 기도 중의 하나가 바로 ‘화살기도’이다.
초기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공동 기도 시간 외의
일하는 시간에도 입에서 기도가 떠나지 않았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또 “끊임없이 기도하라.”(1테살 5,17 참조)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일할 때
자신들이 좋아하는 ‘짧은 성경 구절’이나 ‘거룩한 짧은 말’을
셀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중의 한 가지가
동방 교회의 수도자들이 즐겨 하던 ‘예수의 기도’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끊임없이 하루에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되풀이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현대 영성의 대가이신 토머스 머튼 신부님이 하신
“자꾸자꾸 반복하여 말하고 되뇌어라! 수시로! 그리고 끊임없이!
그것이 기도이고, 기도는 하느님과 깊은 관계이다.”라는 말씀은
바로 화살기도를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상적인 생각에도 에너지가 담겨 있는데,
거룩한 ‘지향’을 가지고
거룩한 ‘말’로 셀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화살기도는
과연 얼마나 큰 에너지를 담고 있을지,
그 영향력은 어떠할지 상상을 해 보았는가?
고대부터 모든 종교에서 거의 다 사용하던 대표적인 기도가
짧은 ‘주문呪文 기도’다.
힌두교의 ‘만트라’가 바로 그 대표적인 주문 기도다.
만트라라는 말은 ‘진언眞言’이라고도 하는데
거짓 없는 참말, 진실한 말이라는 뜻이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찬가, 신을 찬미하는 짧은 말,
진리의 말이라는 뜻이다.
인도의 고대 산스크리트어인 ‘만트라Mantra’는
사념思念한다는 뜻의 ‘만Man’과 그릇이라는 뜻의 ‘트라Tra’가 합쳐진
‘신의 덕을 사념하는 언어(그릇)’라는 뜻을 지닌 단어라 한다.
그리고 만트라를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뜻의 ‘총지總持’ 또는
‘다라니’라고도 말한다고 한다.
하여튼 만트라를 바치는 사람들은
그 만트라가 병을 치료하는 힘과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힘과
죄를 소멸시키는 힘과 깨달음을 얻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우리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가
지금은 많은 신앙적 지식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화살기도의 힘, 그 위력의 놀라움을 체험하였고
그래서 화살기도를 그토록 입으로 외치고 주장하는 것이다.
화살기도는 정말로 대단한 위력, 능력을 발휘한다.
짧은 거룩한 말 중에서 가장 위력이 센 말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이라는 말에 ‘아버지’를 더해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
이 말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말은 이 세상에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애틋한 심정으로 “하느님 아버지!”라고
소리를 내어 외치면 그것만으로 기도 끝이다.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 외에 다른 말들이 붙는다면
오히려 그것들은 ‘빈말’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하는 배우자 간에 진정으로 사랑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여보!’ 외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기도 중의 기도,
최고 능력의 기도,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
하느님의 뜻이 이 땅의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
‘주님의 기도’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동굴 문을 여는 주문, “열려라 참깨!”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려라 참깨’이다.
나는 우리 신앙인에게 이 ‘주님의 기도’ 외에 다른 기도는
다 ‘빈말에 불과하다’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뜻대로 살기 위한 길을 열어 주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의 핵심 요약인 내맡김의 화살기도이다.
“하느님 아버지,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저를 이끌어 주소서!”와
“주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이다.
끊임없이, 셀 수 없이 반복되고 되풀이된 화살기도가 나의 입을 떠나
소리와 함께 자취도 없이 그냥 허공에 사라져 버리겠는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한 번 생겨난 모든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나는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애정을 갖고 끊임없이,
정말 정성을 다해 바쳤었고,
약 3개월 후부터는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번 내 말을 굳게 믿고 꼭 시도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 하느님의 마음이 열리게 된다.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하느님 나라를 살게 된다.
참말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마음을 열고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열려라, 참깨’와 같은 화살기도의 능력을 체험했기에
힘을 다해 가르쳐 드려도 제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드물다.
‘유치하게 똑같은 말의 반복인 화살기도를 하라고?’
많은 이들이 이미 다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느님의 진리는 절대로 어른들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철부지들에게만 드러난다(루카 10,21 참조).
그것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다.
화살기도는 정말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타 종교의 만트라 기도가
‘병을 고치고, 죄를 없애 주며, 깨달음을 얻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내맡김의 화살기도는
이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소유’하게 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내 말을 믿지 않고 평생 시간을 낭비한다.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인디언들은 바라는 소원이 있을 때
그 소원을 일만 번 외우면 실현된다고 믿고 그렇게 실천한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가르쳐 줘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토머스 머튼 신부님의 말씀대로
하느님과 깊은 관계 맺기를 원치 않아서일까?
아니면, 하느님 외에도 가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당장은 하느님이 필요하지 않고,
나중에 죽을 때나 필요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