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르신들께서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의 느낌이 든다고 해서 천붕(天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것은 참척(慘慽)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슬픔과도 견줄 수 없는 슬픔, 참혹하고 깊은 슬픔을 일컫습니다. 부모는 산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참척의 고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상처가 아물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여쁜 한 송이 꽃 같던 아이들이 차갑고도 깊은 바닷물 속으로 낙화한 지 십 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냐? 언제까지 그 이야기 할거냐? 며 투덜거립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입니다. 혈관 속에 따뜻한 피가 돌아다니는 인간으로서 그런 말을 어찌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남아있는 부모나 가족은 아직도 참척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잠 못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천 번 헤아려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 앞에서는 섣부른 위로의 말도 조심스럽습니다. 그저 침묵 속에,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 옆을 지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그 혹독한 고통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발산하며 애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가 막히는 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아이를 앞세우는 큰 슬픔에 힘겨워하는 분들을 위해 오늘 주님께서는 한줄기 위로의 말씀을 건네고 계십니다. 이 세상 어딜 가도 그 슬픔 그 고통 위로가 안되니, 어떻게든 주님 안에, 그분 말씀 안에 위로를 받으시고, 극복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이 혹독한 시절이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우리 모두 반드시 따뜻한 주님의 품 안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날에는 더 이상 슬픔도 눈물도 괴로움도 없을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