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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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4-17 | 조회수25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4년 04월 17일 수요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도대체 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오늘 복음은 당신을 믿는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영원’으로 옮겨진 히브리 말 ‘올람’은 단순히 미래와 연결된 시간적 개념만을 뜻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충만을 뜻합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충만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이를 위하여 하늘에서 ‘생명의 빵’으로 예수님께서 내려오셨음을 선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충만을 체험하도록 움직인 이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은 교회의 성장과 함께 일어난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일곱 부제가 선발되었으며, 그들 가운데 하나였던 스테파노가 순교하였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오늘 독서는 스테파노의 장례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해를 이야기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박해는 좌절과 끝이 아니라 교회의 단초를 견고히 다지는 시작임을 선언합니다.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복음을 전하고, 이로써 하나도 잃지 않고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하느님의 뜻이 온 세상에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역경과 박해, 걱정과 갈등 없이 사는 것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사도들처럼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경이롭고 찬란한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 그 충만함이 곧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한 삶입니다. 복음의 ‘잃고 싶지 않다’(39절 참조)는 표현은 다른 말로 하면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37절 참조)는 의미이고,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임을 알고 믿을 때 이러한 충만함(영원)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에게서 그 누구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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