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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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19 | 조회수16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주님이 자신의 살을 먹어야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미쳤군 하면서 도저히 주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입니다. 어찌 인간의 몸과 피를 먹는가? 식인종인가? 공부를 잘하고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소위 공부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성당에도 스펙이 대단한 분들이 많더라구요. 어느 신부님 못지 않게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한 분들이 꽤 되더라구요. 그런데 문자 혹은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신학과 영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논리는 점수로 등급을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과 영성은 다른 것입니다. 예전에 고 박종인 라미문도 신부님에게 어느 자매가 교리 신학원을 가겠다고 하니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목청을 높여서 꼭 가겠다고 하면서 신부님과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논리력으로 무장이 되어야 성당에서 사람들과 대적할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신부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교리 신학원에 가서 입만 살아있게된다 것입니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말이 입만 살아서와 같습니다. 복음으로 돌아오면 주님이 나는 살아 있는 빵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고 도저히 이해가 않가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떠납니다. 그래서 주님을 십자가 형으로 죽입니다. 논리력으로 열심히 따지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님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라이문도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영적인 머무름을 말합니다. 이성과 영적인 것은 분명한 간극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고도한 학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영적으로 고도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픔을 치유하여 주고 영적인 것은 빛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구분을 두지 않고 서로 보듬어 줍니다. 그것이 빛이기에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빵이 먹히는 존재입니다. 내 몸이 부수어지고 내 것이 없어지고 그것을 먹는 사람이 그 빵을 먹음으로 인해 그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 쓸 수 있을 까요? 추정 할 따름입니다. 영성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빵을 거부한 사람들은 어찌되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 부재의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둠으로 돌아갑니다. 어둠은 논리만 추종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영성이 우선하고 그 다음에 논리가 따라야 합니다. 세상은 논리로 이루어 져 있기에 그것을 부정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balancing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도 전자공학 박사로 논리를 주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선하는 것은 하느님앞에 머무름이 우선입니다. 나름 공학적으로 잘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최고 기업에서 돈도 잘 벌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나의 최 우선은 아닙니다. 세상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하는 것은 영적인 삶, 내 몸이 부수어지고 먹히고 희생하면서 주님을 드러내는 삶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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