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부활 제 3주간 토요일 - 영의 선택 / 김찬선 신부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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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20 | 조회수15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우리는 한 주간 내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몸과 피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내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넘어 듣기에 거북한 말씀을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당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주신다고.
이에 사람들은 급기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듣기에 거북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내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기에
그래도 이해하려고 애쓰며 주님 곁에 머물러 있으려 했지만
듣기에 너무 거북한 말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며 마침내 떠나버립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겠냐고 하시며
당신 말씀은 거북한 말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주님의 말씀이 거북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이고,
영적인 말씀이 거북한 한 이유는 우리가 육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며
영적으로 한 말을 육적으로 이해하면 거북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는 이에게 하느님 나라를 얘기하면 거북할 수밖에 없고,
권좌에 오르려는 이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면 거북할 수밖에 없음과 같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거나 하는 것,
주님의 말씀이 달콤하거나 거북한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 안에 주님의 영이 계시냐 육의 영이 있느냐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영적인 말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몸과 관련한 권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영 안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드님도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에 아버지를 보는 방법과 다르게는 아무도 아드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영과 신성으로 보지 않고, 인성으로만 보아 그분이 하느님의 참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보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던 모든 사람은 단죄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축성되는 성사를 보면서, 영과 신성에 따라 이것이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라는 것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모든 사람도 단죄받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이것을 증명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머무르시는 주님의 영이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무시게 하는 것인데
주님의 영이 자기 안에 머무시게 하는 쪽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 사람입니까?
주님은 어느 쪽 사람이냐고 오늘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이에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선택입니다.
내 살던 대로 살겠다며 육의 영을 선택할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추구하게 하는 성령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대로 내 안에 어떤 영이 있는지 먼저 식별하고
다음으로는 성령을 선택하고 성령을 모셔 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처럼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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