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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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21 | 조회수437 | 추천수1 | 반대(0) |
지난 성금요일입니다. 성금요일은 3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말씀의 전례, 십자가 경배, 영성체입니다. 말씀의 전례 중에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창에 찔린 상처에서 나온 예수님의 피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무도함과 우리의 잔혹함으로 예수님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처에서 나온 피는 우리를 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처에서 나온 피는 우리의 무도함과 잔혹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에서 나온 피는 우리를 용서하는 피였습니다. 그 상처에서 나온 피는 우리를 사랑하는 피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피와 물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전례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교우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강론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자식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자식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도 그 자식을 벌하거나, 그 자식의 죄를 드러내려하지 않습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랄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 ‘공공의 적’이 생각났습니다. 학벌이 좋고, 능력이 있는 증권맨인 아들이 부모님에게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유산을 먼저 달라고 하였습니다. 보모님은 보육원을 운영하기에 아직은 유산을 줄 여력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부모 몰래 생명보험을 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강도로 위장해서 부모님의 가슴을 칼로 찔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들의 손톱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비정한 아들을 보면서 떨어진 손톱을 삼켰습니다. 손톱 때문에 아들의 범죄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손톱 때문에 아들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식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인이 어떻게 젖먹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 설령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난 너희를 잊지 않는다.”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사랑하는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이 다른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야기를 하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뒤를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사제가 되었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두 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양반과 천민이 없는 평등한 세상입니다. 서양의 학문을 배웠던 최양업 신부님은 바로 그런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고, 그런 나라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람이 되셨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셨듯이, 선교사들은 먼저 선교해야 하는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충돌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우리가 희생과 사랑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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