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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 2024년 4월 23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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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2 조회수236 추천수5 반대(1) 신고

제1독서

 사도행전의 말씀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성전봉헌축제’ 때 벌어진 유다인들과의 논쟁을 들려줍니다.

이날 벌어진 논쟁의 주제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성전 안의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신 예수님을 둘러싸고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직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주시오?”(요한 10,24) 라고 도전적인 태도로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요한 10,25)

그러나 그들은 믿기를 원하지 안했으며, 예수님의 양들이 되기를 원하지 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요한 10,27)

여기에서 양의 특성을 ‘듣다’, ‘알다’, ‘따르다’, ‘준다.’ 라는 네 개의 동사를 통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듣다'라는 말에는 ‘더 깊이’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곧 ‘마음으로’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듣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받아들인 내면적인 관계의 형성을 의미하며, 인격적인 교류를 뜻합니다. 

그리고 '알다'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정보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밀애의 영역에서 체험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성소의 길은 말씀을 듣고 ‘체험’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앎을 바꾸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따르다'는 뜻은 ‘받아들이다’, ‘환영하다’란 의미를 넘어서, ‘곁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곧 ‘곁에서 함께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세 동사는 모두가 관계를 깊이 맺는 진실된 ‘관계성’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듣고 순명하는 진정한 관계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믿는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요한 10,28)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0,28)

그렇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떨어져 내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곧 아무도 우리를 그분의 손에서 채갈 수는 없지만, 자칫 스스로가 자유로이 그분의 손에서 떨어져 내릴 수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결코 우리는 예수님의 손에서 스스로 빠져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10,28)

 

주님!

오늘도 당신은 제 온 몸에 당신 손때를 묻히십니다.

제 손을 꽉 붙들고 놓치지 않으시려 손깍지를 꼭 끼십니다.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허리를 감싸 안으십니다.

제가 당신께 소중한 존재인 까닭입니다.

진정, 저는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저의 전부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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