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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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4-23 | 조회수248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4년 04월 23일 화요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독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기원을 전하여 줍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파견합니다. 그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나자렛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백하는 이’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셨지만(인성) 동시에 그리스도이신 하느님(신성)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시도록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며 무기력한 불통을 지적하십니다. 서로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으며, 견제와 위협만 되풀이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상대의 소리를 알아들어야 하고(어제 복음), 그 소리를 따라야 하며(오늘 복음), 그 따름으로 상대방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를 구별하여 알아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 관계성을 증언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때,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처럼 아무리 “분명히” 말한다 하여도 다시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며 똑같은 의심만 되풀이하게 됩니다.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리 말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의심을 붙잡고 있으니 믿음도 생겨날 리 없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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