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기는 것은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담는 그릇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입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앎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유다인들은 눈앞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메시아 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메시아다, 구세주다’라는 생각이 그릇된 ‘메시아 상’을 만들고 결국은 예수님을 외면하였습니다. 때로는 아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자유를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설명이 분명할수록 그들의 고집은 더욱 굳어질 따름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을 가고, 유다인들은 유다인들의 길을 갈 데까지 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농사를 짓는데도 ‘농사법’을 끊임없이 개선하지 않으면 더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방법을 고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를 통해서 다시 방법을 얻게 될 것입니다. 품종개량도 하고 거름을 주는 시기도 바꿔보고....새 방법을 시행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게 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먼저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것을 내 안에 담아주지 않는 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숨을 내놓은 순종으로 온 것입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놓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8).
내 뜻을 이루려다 보면 무리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거짓 포장과 술수가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속을 태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가 된 예수님을 본받아 내 뜻을 접고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가슴에 모셔드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려있는 듯이 하십시오! 또한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있는 듯이 기다리십시오”(성 이냐시오). 사도들이 말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5,29).
시편을 보면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제가 길을 가도 누워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139,2-3).라고 적고 있습니다. 나를 아시는 분에게 나를 온전히 맡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잠언1,7).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아는 바가 주님을 섬기는 것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잠언9,10)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선물은 예수님께대한 신앙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남아서 결코,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잘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주님과 일치를 이루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구원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지니셨지만 하느님이십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