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요한14,1-7) | |||
---|---|---|---|---|
이전글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다음글 | 「복음을 선포하여라」_반영억 신부님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4-25 | 조회수17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부활 제4주간 금요일]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복음(요한14,1-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제자들의 뜻,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성경 말씀대로 죄인들의 구원자(피의 새 계약)로 파견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사도13,26-33)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 모든 말씀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늘의 안식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인간의 뜻, 소원을 이루어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 하느님의 나라, 그 안식의 거처는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데 무슨 자리를 마련하러 가신다는 말씀인가?
(히브4,3) 3ㄴ 우리는 믿었기 때문에 그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습니다. = 하느님께 들어갈 수 있는 길, 그 자리다. 곧 창조 이래 모든 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더러운 양심까지 모두 씻어줄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다 이루실 십자가(十字架), 그 한 곳이다. 그 한 곳뿐이다.
(2사무7,10) 10 또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를 *곳을 정해 주어 그 곳에 뿌리를 박고 전처럼 악한들에게 억압당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살게 하리라.
(로마8,38-39)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피의 새 계약)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1요한4,10) 10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속죄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 분명하게 다시 말씀하신다. ~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죄인들의 저주로, 그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시는 그 길이 구원의 진리(眞理), 생명(生命)이시라는 말씀이다.
* 사제의 가르침 중~ 창세기28장을 보면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는 죄를 짓고, 자기가 살던 집에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돌 하나를 베고 누워서 자다가 꿈을 꿉니다. 땅에 층계(사다리)가 세워져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있습니다.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층계는 바로 나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을 닿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이 층계를 통해서 당신께로 올라오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의 ‘깨어남’은 잠에서 깨어남이지만 실제로 깨어남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깨달음’입니다. 여태까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 왔던 야곱이 이제는 하느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순간이 됩니다. 그는 이 순간에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창세28,16) 하고 고백합니다. 야곱의 이 깨달음이 이제 신약으로 넘어옵니다. 야곱에게 층계를 통해서 하느님께로 이르는 길을 보여 주셨던 하느님께서 잊데는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사다리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상.~ 그래서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 이전에 계획하셨던 하느님의 뜻, 지혜시다.
7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 그런데 예수님과 하느님을 올바로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곧 사람의 뜻, 생각, 지혜로, 사람의 계명, 법의 예수님과 하느님으로 알고 하는 그 헛된 신앙을 사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뜻,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산란해져 ‘행위 신앙’에 더 열심을 부린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곧 예수님을 새 계약(契約)으로, 구원(救援)의 길, 진리(眞理), 생명(生命)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나’를 믿는 것이다. 나의 열심, 행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의(不義)불법(不法)이다.(마태7,21-23 참조)
(1요한3,18-19) 18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진리(眞理)-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이다. 그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주는 것이 마음의 쉼, 안식을 주는 사랑이다. (1요한3,20-21) 20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때에는 하느님 앞에서 떳떳합니다. =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에 대한 믿음이 마음을 단죄하지 않게 한다. 죄 의식에 시달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피의 새 계약, 그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의 더러운 양심, 마음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 이전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 그 *‘크신 그리스도’를 ‘죄인(罪人)들의 속죄(贖罪) 제물’로, ‘약한 모습의 구원자’로 세우셨음이다.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는 하느님의 뜻, 지혜다. 오히려 어리석어 보인다.
(1코린1,21-25) 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24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모든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바오로 사도처럼(필리3,7-11) 육신의 강한힘을 쓰레기로 여기며, 약한 자로, 크신 하느님, 예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