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예수님-
문없이 살 수 없듯이 길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빛을 찾는 인간이듯 문을 찾는 인간이요 길을 찾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방에 들어서면 우선 창문에 눈길이 가고 밖에 나서면 길을 가게 됩니다. 오늘은 길에 대한 묵상입니다. 길에서 나서 길을 가다가 길에서 죽는 인생입니다. 길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도인(道人)인 인간입니다. 길을 잃어 방황이요 길을 찾는 인간입니다. 길하면 넷이 생각납니다.
1.하숙생의 길입니다. 1960년대 풍미했던 인기의 절정이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좋아해 많이 불렀던, 지금도 70-80대 노년 인생들이 잊지 못할, 지금은 고인이 된 최희준 비오의 하숙생 노래입니다. 당시는 신자가 아니었지만 인생 후반 재혼과 동시에 아내의 권유로 세례받았으며 성당 활동은 내 인생의 기쁨이라 고백한 최비오 가수입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넷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이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간다”
들을 때마다 온몸과 온맘에 촉촉이 적셔드는 느낌의 가사와 곡의 노래입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믿는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 간다고 고백합니다. 믿는 이들 앞에 놓여있는 “나는 길이다” 천명하신 하늘길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2.길하면 생각나는 2014년 안식년때 800km 2000리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인생길을 압축한 듯한 순례길이요 지금도 순례길을 걷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도여정의 길이요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 걷게 될 길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명심할 요소는 목적지, 이정표, 도반, 기도요, 날마다의 길을 걷는 여정에 상기해야 할 필수요소들입니다. 내 인생길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했을 때,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와있겠는가 자주 점검해 보는 것도 산티아고 순례 덕분입니다.
3.날마다 아침식사후 맨발걷기 한지도 7개월째입니다. 집무실에서 십자가의 길 따라 가다가 하늘길 따라 수도원 정문까지 갔다가 다시 역순으로 걸어서 집무실로 돌아오는 참 상징성이 깊은 하늘길과 십자가의 길입니다. 순례길 걷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걷습니다. 집무실의 위치가 십자가의 길 14처가 끝나는 지점 바로 위에 위치해 있어 저는 집무실을 제15처 ‘부활의 집’, ‘지족암(知足庵), 천장암(天藏庵)이라 부르기도합니다.
4.하늘길이란 제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23년전 요즘 때 글이지만 하늘빛을 간절히 찾는 당시의 제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시요, 그 굽이굽은 굽은 소나무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참 많이도 굽었다
하늘빛 찾아가는 하늘길
순탄대로 곧은 길만은 아니다
첩첩의 장애물 온갖 초목들옆 좁은 틈바구니
하늘빛 찾아
이리저리 빠져나가다 보니
참 많이도 굽었다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다
거룩한 아름다움이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하늘빛 가득 담은 내사랑 소나무야!”-2001.4.21.
길을, 하늘길을 찾는 인간이요 이 길을 잃어 방황하는 사람이요 죄도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길이라 다 길이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는 길도 참 많기 때문입니다. 과연 제대로 인생길을 가고 있는지요? 문중의 문 하늘문은, 길중의 길 하늘길은, 단하나 예수님뿐입니다. 한결같이 예수님의 하늘길을 걷는 이들은 저절로 다음 옛 어른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지위나 명성이 아니라, 하루하루 충실하게 쌓아가는 일상이다.”<다산>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을 지키고, 인(仁)에 의지하고, 예(禮)에서 노닌다.”<논어>
하늘문, 하늘길이신 예수님을 떠나, 잃어 방황이요 혼란이요, 근심걱정에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어리석게 멀리 밖으로 찾아갈 것이 아니라 눈만 열리면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하늘문, 하늘길이신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버지께 가는 하늘길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도 몰라 전전긍긍 불안해 하는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하늘길 예수님이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바로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는 물론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말씀입니다. 아버지께 가는 길이신 하늘길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이미 지금부터 앞당겨 지금 여기서부터 실현되는 아버지의 집에서의 삶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를 깨닫는 우리들입니다. 다음 토마스의 물음에 대한 주님의 답이 참 통쾌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 이르는 하늘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환히 드러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복음이 이 한구절로 요약됩니다. 거짓 길도, 거짓 진리도, 거짓 생명도 거짖 빛도 참 많습니다. 생화인지 조화인지 구별하기 힘든 세상이듯 가짜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바로 진위를 식별하는, 분별하는 잣대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 닮아갈수록 지혜로운 분별이요, 아버지께 이르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기쁘게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걷게 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에서서의 진리와 생명의 삶, 영원한 생명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하늘문을 드나들면서 풍성한 은총에 충만한 삶이듯 예수님의 하늘길을 걸으면서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지면서 희망과 기쁨, 자비와 지혜, 온유와 겸손, 평화와 행복이 충만한 삶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하늘길이신 주님을 통해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는 바오로의 강론이 우리에게 용기백배 힘을 줍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소식을 전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되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날마다 오늘 부활하시는 예수님이시오, 날마다 오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시는 하늘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예수님과 일치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