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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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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6 조회수240 추천수2 반대(0) 신고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1-4).”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1) 이 말씀 바로 앞에는 베드로 사도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예고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13,38).

그리고 그 앞의 21절에는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말씀도 있습니다(요한 13,21).

최후의 만찬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거나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시니까, 그들은 더욱더 두려워하고 의기소침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심과 불안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라는 말씀은, “지금 이런 상황 때문에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예고 말씀을 하실 때마다 부활 예고

말씀도 하셨는데, 제자들은 부활 예고 말씀은 흘려들었고,

수난과 죽음 예고 말씀은 듣기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예고 말씀이 주는 충격이 너무 커서

그랬을 것입니다.>

 

2)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실패란 없다는 것을 믿어라. 또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온 내가 하는 일도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뒤의 30절의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요한 14,30).”

적대자들과 박해자들은 예수님에게 아무 권한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또 이 말씀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도 연결됩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저승의 세력’은 ‘악의 세력’일 수도 있고 ‘죽음의 세력’일 수도

있는데, 어떤 세력이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쓰러뜨릴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과 예수님의 힘은

세상의 그 어떤 세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심과 불안감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은

인류 구원 사업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왜 꼭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는가? 그냥 처음부터 부활로

직행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모르니까 ‘파스카의 신비’ 라고 표현합니다.

‘신비’ 라는 말은,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파스카의 신비’ 라는 말은,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고, 그 일들은 사실상 하나의 사건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었고, 그 일들을 통해서 인류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하느님의 섭리’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섭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하느님은 ‘악’에서도 ‘선’을 만들어내시는 분입니다.

‘악’이 하느님의 뜻은 아닌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악마저도’ 당신의 뜻을(선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하느님의 섭리’ 라고 표현합니다.

 

4)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는 자격을 갖추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나라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이라는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활동의 끝’이 아니라,

‘한 과정’이라는 것을, 즉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데리고

가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다시 와서”는, 여기서는 재림이 아니라 부활을 뜻합니다.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라는 말씀은, ‘부활 후의 현존’을 뜻하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아야 하고, 나를 따라야 한다.”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는 말씀은, 당신만이 유일한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고, 흔들리지 말고

당신만 믿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의심과 불안’은 믿음을 흔들어대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면서,

더욱 굳게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출처] 부활 제4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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