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의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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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4-04-29 | 조회수21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사랑의 길 나는 죄를 짓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모욕하고, 내 물건을 빼앗은 형제 앞에서 "내가 옳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가 변명을 하려고 애쓸 때 눈을 감아 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내게 잘못을 저지르고, 내 물건을 빼앗고, 나를 때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냉정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냉정하게 생각하면서도, 즉 네가 잘못했고 내가 옳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정당성을 주장하지도 정의를 내세우지도 않으며 오히려 힘든 사랑의 길로 매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코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 또한 내 정당성에 반해 자신의 정당성을 최대한 내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사실이 기억납니다. 즉 정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이 일어났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학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마다 수호해야 할 자신의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결국 우리는 그분의 생각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으로 극복하시고 진리를 당신의 희생으로써 쟁취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차마 용서해 줄 수 없는 부도덕한 형제들에 대해 바로 그 방법, 그 척도를 사용해야할 차례입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비겁한 행동이나 절도나 퇴폐적 생활을 용서해야 할 또 다른 베드로, 또 다른 강도, 또 다른 막달레나를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간음한 여인 앞에서 예수님께 제시했던 대로 돌을 던지는 대신 예수님이 하신 "'너의 죄를 묻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요한 8,10-11)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삶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율법적이고' '틀에 박혀 있고' '죽어 있는' 그런 교회로 다시 돌아갈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이 세상의 모든 성전과 지성소의 바리사이들처럼 계속해서 미움에 사로 잡혀 있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 말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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