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14,27)
주님께서 오늘 저희에게 주신 평화는 세상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평화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평화는 바로 당신의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저희에게 가져다준 평화입니다. 주님은 이미 죽기 전에 이를 언급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6,33) 이처럼 평화란 늘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얻어지는 선물이며 열매입니다. 곧 부활의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당신은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제 방은 수덕사의 선방처럼 깨끗하지 못합니다. 정리를 했음에도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상자가 무질서하게 널려 있으며 그 방에 있을 땐 느끼지 못하지만, 외출해 돌아왔을 때 참 심란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머무는 제 방이 제 마음의 상태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몸이 불편해서 자주 청소하지 못해서 늘어놓은 물건들이 그렇게 어지럽고 산만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석가는 “마음은 산란해지기 쉽다. 그러니 통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방도 마찬가지로 내버려 두면 바로 먼지가 쌓이고 미루다 보면 여러 불필요한 것으로 쌓여가기 마련이겠지요.
성 아오스딩은 평화를 “활동이나 노력이 불필요한 상태가 아니라 질서의 안정이다.” 하고 했습니다. 비록 격렬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도 질서가 있으면 평화가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분주하고 산만한 가운데서도 하나의 의지 곧 하느님의 의지가 드러나는 곳에는 질서가 있게 되고, 그러한 상태에서도 평화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가 상충하는 곳에는 걱정과 불안이 만연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평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4,6)라고 말씀하신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을 듣고 난 뒤 제자들의 반응이 걱정(=산란)과 두려움(=겁)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불안이나 근심 걱정은 단지 제자들만의 내적 움직임, 감정이 아닌 우리의 일상적인 실존이고 상황이라고 봅니다. 평화와 불안은 상반되는 질서입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부재 그리고 하느님의 의지와 인간 의지의 상충과 갈등이 빚어내는 질서와 무질서라고 봅니다. 이는 곧 제자들의 내심에 하느님의 의지 보다 자신들의 의지가 작용했기에 마음의 평화를 잃고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평화를 주노니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단떼의 표현처럼 “그분의 뜻 안에 우리의 평화가 있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 평화가 있지만 그분이 아니 계신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분의 뜻이 우선할 때 우리 마음에 평화가 넘쳐나지만, 우리의 뜻이 드러날 때 두려움과 걱정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기 마련입니다.
예전 저의 어머니는 늘 상 ‘뭐니 뭐니해도 신간이 편해야 해’라고 자주 말하셨죠. 곧 마음이 편해야 사는 것 같지만,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화려한 집에서 살아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아니 우리의 삶이 늘 상 하느님의 뜻을 가장 우선적으로 살아갈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의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머물면 일상에서 평화라는 열매를 풍부하게 얻을 것입니다. 예수처럼 하느님 안에 삶의 뿌리를 내리십시오. 그러면 풍부한 평화라는 선물을 풍성히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자기 삶의 모든 근간을 두셨기에 고난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셨음에도 걱정하거나 두려움 없이 평화를 유지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아버지와 예수님의 의지와 뜻에 우리 삶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상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시련과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평화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란 하느님의 의지와 뜻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 평화롭지도 못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우리의 삶과 신앙의 뿌리를 세속적인 가치 위에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의지와 뜻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평화를 누리길 바라면서 인사드립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