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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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30 | 조회수19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마태 13,54-58).”
1) 여기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라는 말과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말을 합하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대해서 “목수는 목수 일이나
할 것이지, 감히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당신도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마르 6,3).
그리고 사도들의 직업을 보면,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고, 마태오는 세리였고,
‘나타나엘’은(‘바르톨로메오’는) 율법학자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사도 18,3).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으실 때 그들의 직업이나 출신 같은
것은 보지 않으시고, 그들의 신앙과 열정만 보셨습니다.
그것은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의 천지 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은 육체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라고 표현하셨습니다(요한 15,1).
당시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들을 멸시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죄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분명히 직업 자체가
죄가 되는 ‘악한 직업들’은 있습니다.
범죄 조직과 관련된 직업들이 그 예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 것도 없이, 우리는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직업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그 직업을 버려야 합니다.>
2) 창세기에 근거해서 말하면,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일”이고,
‘노동자’들은 ‘하느님을 도와드리는 협력자들’입니다.
따라서 ‘노동’은 ‘선(善)’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선’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악한 일’은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모든 노동’이 다 선한 것이 아니라, ‘선한 노동’만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은 ‘살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은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죽이고 파괴하는 일은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그렇고, 자연을 파괴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를 거스르는 일은 ‘큰 죄’입니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살리는 일’입니다.
나도 살고, 가족들도 살고...
그리고 ‘사는 것’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혼자서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고통과 불행 속에 몰아넣고서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행복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3) 바오로 사도는 ‘노동’에 관해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7-12).”
<그 당시에,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 중에는 종말이
곧 오니까 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일은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마라.” 라는 말과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라는
말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마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파업을 막으려고 성경 구절을 함부로 악용하는 것은
성경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무노동 무임금’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에게
해야 할 말입니다.
일은 하지 않고 돈만 받아가는 정치인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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