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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을 직접 뵙는 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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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3 조회수241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한 14,6-10).”

 

1) 여기서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라는 요청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한 번 구경해 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직접적인

‘하느님 체험’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 말입니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확신’이 또 필요한

것인가? ‘믿음’과 ‘확신’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믿음’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믿음의 깊이’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믿음의 완성 단계’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도들처럼

조금씩 믿음이 깊어지고,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숙해집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아는 단계에서 믿는 단계로,

믿는다고 머리로 생각하는 단계에서 그 믿음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는 단계로, 그다음에는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인생 전부를 걸고 ‘온 삶으로’ 사는 단계로......

순교는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이고, 믿음의 마지막 단계인데, 사도들은 첫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순교 단계에 도달한 분들입니다.

 

2)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라는 말씀은, 믿음의 성숙이(발전이)

더디다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있지만, 아직 미성숙한 초보 단계라는 것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도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

예수님의 ‘꾸중’은 제자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사랑의 회초리’ 같은 것입니다.

<‘이토록 오랫동안’이라는 말에서,

히브리서에 있는 다음 말이 연상됩니다.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히브 5,12-6,1ㄴ.3).”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미숙한 상태에 있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좀 더 성숙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3) 사도행전에 ‘하느님을 직접 뵌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스테파노 순교자입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7,55-56).”

스테파노 순교자는 하느님을 직접 뵙게 되면서,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게 가졌을 것이고,

그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 없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스테파노에게

보여 주신 일은, 또 예수님께서 함께 나타나신 일은,

스테파노를 마중 나오신 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과 순교가 결코 헛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해 주신 일로도 해석합니다.>

스테파노 순교자가 하느님을 직접 뵌 일은 ‘내적 체험’이

아니라, 또는 자신의 내면에서 하느님을 만난 일이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뵌 ‘실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보고

스테파노 혼자서만 본 일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직접 뵙는 일’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사람만 받는 특별한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하느님을 직접 뵙는 은총을 받았다고,

또는 ‘하느님 체험’을 했다고 우월감을 가져도 안 되고,

그 은총을 못 받았다고 열등감에 빠져도 안 됩니다.

‘모든 신앙인’이 하느님 체험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 대로 믿고, 믿는 대로 살면,

언젠가는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늘 직접 뵙고 섬기면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묵시 22,3-4).>

 

[출처]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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