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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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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3 조회수270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요한 14,6-14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구교’ 집안에서 태어나신 형제님이 계십니다. 그 형제님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은 어려운 신학 관념도 아니었고, 복잡한 교리도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삶이 곧 신앙생활이었고, 신앙이 언제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형제님의 어머님은 가마솥을 열고 밥을 푸시기 전에 주걱으로 십자성호부터 그으셨습니다. 집에서는 이름보다 세례명으로 불릴 때가 더 많았습니다. 생일에는 당연히 본당에 생미사 지향을 넣고 함께 미사를 드렸습니다. 기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가족을 위해 연도를 바쳤습니다. 자기 전이면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성경을 읽어주셨고, 가족끼리 어디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챙기는 일이 숙소 주변에 성당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님에게 있어서 신앙은 손가락에 봉숭아 물이 들듯 그렇게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물들어가는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 단 한번도 하느님의 현존이나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살면서 느껴지는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필립보에게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나봅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청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그분의 행적과 삶을 지켜봐왔으면서도, 그분께서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무르시면서 그분의 뜻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겁니다. 일로만 주님과 함께할 뿐 삶으로는 주님과 함께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주님과 일치할 뿐, 마음으로는 그분과 하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기대나 바람과는 다른 예수님의 모습에 그분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 맞는지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직접 보게 해달라고 그러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겠노라고 청한 겁니다.

 

물론 필립보의 바람은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100% 확실하고도 완전한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다면, 하느님을 의심 없이 굳게 믿으며 따를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요? 우리가 청소년 시절 부모님께 그렇게나 반항하고 대들었던게 그분들의 존재 자체를 의심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닐겁니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따르는가 아닌가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필립보에게 ‘보는 것’의 한계를 일깨워주십니다. 필립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당신을 ‘보았음’에도 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시각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눈으로만 볼 생각하지 말고 먼저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써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먼저 충족시켜야 믿겠다는 고집만 부리지 않는다면,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당신께서 하신 일들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현존과 뜻을 드러내는 차고 넘치는 표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표징을 알아보는 이들은 굳은 믿음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더 크고 심오한 섭리까지 알아보게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도 그런 과정을 거쳐 참된 믿음을 지님으로써 사도로써 받은 소명에 끝까지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신앙을 차분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머리로만 주님과 함께 하느라 정작 마음으로는 그분의 현존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빈 껍데기’ 신앙에 물러 있지는 않은지 깊이 성찰하며,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데에 더 집중해보면 좋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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